너희는 복음을 전하라
마가복음16:9-20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에 신화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사실로 둔갑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과 경험을 뛰어 넘는 일이기에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믿을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도 들은 사람들 중 누구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11.13.14절) 실존주의 신학자인 불트만( Bultmann)은 역사적 방법으로는 성경 내용을 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는 오늘날 그 사건에 나에게 어떤 경험을 주는가”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경험이나 의미가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와 신앙을 분리시키려는 매우 위험한 사상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역사이며, 사실이며, 앞으로도 반드시 이루어지는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언이 성취된 역사요, 그래서 앞으로 일어날 나의 부활에 대한 약속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다가 주님의 시신이 도굴된 줄로 알고 하염없이 울고 있을 때에 주님이 나타나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당신이 시신을 가지고 있거든 돌려 달라”고 합니다. 주님이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메리엄!(아람어.Maryām) 평소에 그를 부르던 소리를 들을 때에 놀라서 돌아보니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지고자 하였으나 주님을 만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찾아가보니 그들을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후에도 11제자에게 나타났으나 그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완악함을 책망하셨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경험을 뛰어 넘어서 일어난 일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려니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15절) 주님의 부활이 믿지 못하고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는 그들에게 “너는 온 천하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아닐 수 있어도 앞으로 성령충만을 받고 성령께서 부활을 믿게 되고 사명을 감당할 것을 주님은 이미 아셨던 것입니다. 전도의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뿐 아니라 그 복음이 증명되어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권세를 주신다는 약속하셨습니다.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문화의 충격을 만나고, 귀신을 만나고, 샤마니즘을 만나고, 종교의 충돌을 만납니다. 그래서 전도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빌어서 쓰는 자들이지 능력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의 끝은 예수님의 승천과 주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것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가복음이 부활하고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역동적이며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면서 주님의 부활의 역사까지 기록하였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전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세상속에 복음
선교는 철저히 피선교지에 있어야만 한다. 세상에서도 손님과 싸우는 장사꾼은 없다. 장사를 그만 둘 사람이라면 손님과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장사를 잘 하려는 사람이라면 옳고 그름을 떠나 손님과 공개적으로 싸우지는 않는다. 옳고 그름의 잣대만 가지고 세상과 싸우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오히려 이익과 권리까지도 포기하여야만 하고 세상과 사람들을 섬겨야만 한다. 막강한 교세를 가지고 힘을 있는 대로 다 사용하고 과시하여 세상을 위협하였다. 그렇다고 정직하지도 상식적이지도 못했다. 복음의 우월성은 돈이나 힘이나 입으로가 아니라 삶으로 세상 사람들 중에서 입증될 때에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