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의 만남


우상숭배, 참 가지가지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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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숭배, 참 가지가지 한다 . . .

가장 현저한 우상숭배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믿는 것이다. 사람은 별의별 것을 다 신이라고 생각하고 믿는다. 신구약 성경에 계시된 신, 곧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그 이외의 신들, 구약 같으면 바알, 아스다롯, 다곤, 밀곰 등등의 신, 한국 같으면 온갖 귀신들을 믿고 의지하여 그것에 의해서 행복을 얻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부 우상숭배이다. 이 우상숭배는 너무나 분명하여 별로 고민거리도 안된다. 오늘날 교회에 이런 식의 노골적인 우상숭배는 없다.

그런데 구약 이스라엘 백성은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 식의 노골적인 우상숭배는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다른 우상들도 섬겼다. 그러니까 적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신들의 반열에 끼워 주기는 한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신전에서도 예배하고, 이방신들의 신전을 만들어서 거기서도 예배했다. 

최고의 코미디는 므낫세였다. 그는 자신의 조부 아하스의 뒤를 충실하게 따랐다.  “왕하 21:4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고 5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6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7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더라.” 그는 여호와의 성전을 헐지는 않았다. 대신 성전 안에 온갖 우상들을 세웠다. 거기서 여호와도 섬기고 우상도 섬겼던 것이다. 이방인보다는 한 차원 높은 우상숭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교회에 부처의 상을 가져다 놓는 일은 없지만, 원리상 이런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좀 더 자존심이 강한 유대인이라면 그런 우상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했다. 그런데 거기에 좀 애매모호한 요소가 있다. 그들이 이방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만을 부르면 우상숭배가 아닐까? 

애매모호한 경우 한 가지를 예로 들면,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마음이 초조해진 이스라엘 백성의 두령들은 아론을 졸라서 금송아지 하나를 만들라고 한다. 그 금송아지를 가리켜서 뭐라고 했는가?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흠, 이거 심히 혼란스럽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여호와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신이었다. 그런데 금송아지를 가리켜서 그것이 그 신이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은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살짝 비틀지 않았나? 그러면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섬기는 데에 별로 저항감이 없었을 것이다. 역시 백성의 두령들답게 정치적이었다.

요런 교묘한 정치적 술수를 쓴 또 다른 사람은 잘 아는 바대로 여로보암이었다. 북조 이스라엘의 백성이 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마음이 변해서 유다로 돌아갈까봐 교묘한 정치적 술수를 발휘한 것이다. “왕상 12: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것이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소위 말하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였다. 

여러보암의 정책의 절묘한 점은 여호와의 이름은 그대로 두고 그 신개념에 다른 것을 뒤섞어버린 것이다. 이 정책은 백성의 마음에 저항감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교회를 타락시켜서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가려는 목사들은 주의 깊게 배워두어야 할 정책이다. 하나님의 이름도 그대로 있고, 기본적인 개념도 그대로 두고 거기에 슬쩍 다른 요소를 집어넣는 것이다. 이 정책을 배워서 목회에서 크게 성공한 교회들이 이미 있다. 그러니 그런 교회를 눈 여겨 보면 된다. 여로보암의 경우, 이름도 여호와로 그대로 인정하고 출애굽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도 그대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 하나님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만들 수 있는 신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개념이 변질되어 버린다.

오늘날 적어도 개신교의 어떤 교회도 예배당에 무슨 상을 세우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 속에까지 다른 상을 세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그릇된 신관을 형성하게 된다. 

예배 시간에 회중이 모여서 예배한다. 어떤 신에게 예배하는가? 물론 하나님께 예배한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 그들이 마음 속으로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그 신에게 예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이 성경에 계시된 그 하나님이 아니라면 뭔가? 그들은 예배드렸지만 실제로는 우상숭배를 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가장 세련된 현대판 우상숭배이다. 모든 시대의 교회에 어느 만큼 만연했던 이 세련된 우상숭배는 그만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이 속는 것이다. 마귀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전략이다.

그러니까 최후의 관건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이게 그릇되어 있다면 결국 모든 종교 행위가 우상숭배로 귀결된다. 하나님은 불신자보다 신자를 편애해서 세상에서 다양한 형태의 특혜를 베풀 것으로 믿고, 어려움이 생기면 달려가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의 머리 속에 든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가르치는 설교자는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셈이다. 회중은 죄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그런 설교자를 좋아하는 회중은 자기 마음 속에 부당한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설교자가 더 큰 심판을 받겠지만 그를 추종한 회중도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어떤 기독교 사역자들이 우상숭배인지도 모르고 주절거리는 말이 있다. 하나님의 일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별 생각없이 하는 말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그만 돈에 종속시켜 버렸다. 이렇게 되면 돈이 신이지, 뭐.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하면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지 않은줄 알아야 한다. 무슨 뚱딴지, 돈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다는 말인가?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너무나 소중하여, 가족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명령도 한쪽으로 제쳐 놓는다. 이건 뭐냐? 가족이 신인거지 뭐. “마 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이런 말씀은 어디다 보내 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가장 난처한 문제를 하나 이야기하기로 하자.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인정하면서도 믿는 대로 행하지 않는건 또 뭔가?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야고보는 그런 경우를 가리켜서 “죽은 믿음”이란 명언을 남겼다. 물론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이다. 다윗이 그 행함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나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시 15:1 [다윗의 시]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이런 삶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인식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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