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의 만남


광야에서 외치는 한 사람의 소리 마태복음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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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외치는 한 사람의 소리
마태복음3:1-10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지내실 “그때에” 사해바다 서쪽 광야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며 부르심의 때를 준비하던 세례요한이 나타나 소리를 외치기 시작합니다.(1절)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와 있으니 하나님에게서 떠난 마음을 돌이키고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2절) 주님이 이 땅에 임하시고 은혜가 임했으니 주님을 만나고 그의 통치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하늘나라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이요, 통치의 개념입니다. 주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에 예수님이 계시면, 그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직장이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유대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선지자의 예언이 사라진  깊은 침묵에 빠져 있습니다. 그때 광야에서 들려오는 요한의 소리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입니다. 요한은 집안이 가난하다거나 가세(家勢)가 기울어서 이렇게 지낸 것은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요한은 명예롭고 부유한 삶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의식주 생활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곧 오실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는 일을 했습니다. 마태는 요한에 대하여 사40:3절을 인용하여 '외치는 자의 소리여'라는 부릅니다.(3절) 고대에는 왕의 행차나 군대가 행진할 때 앞서서 메신저 혹은 전령사를 보내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도록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요한이 돈을 주거나 쌀을 나누어 준 것도 아닙니다. 푸짐한 물질의 축복을 빌어주지도 않았습니다. 병든 자들을 치료하는 은사를 행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숨기고 싶은 죄악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는 광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분명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소리입니다. 그분의 인격만을 드러내고 소리는 결국 사라집니다. 메신저는 기억되지 않고 듣는 자의 가슴속에 오직 전달된 내용만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야 합니다. 이 비대면의 시대에 견디기 힘든 광야 같은  세상에 소리가 들려와야 합니다.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 내용이 분명치 않는 것은 소리가 아니며, 자신만을 드러내는 것도 소리가 아닙니다. 요한은 짧은 일생을 살았으나 소리로 존재하다가 갔습니다. 이 몸이 곧 썩어질지라도 내가 외친 소리를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역사할 것을 믿고 외쳐야 합니다.   

요한은 전문 종교인인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이라며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7절) 꼭 맺어야할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일까요?(8절) 눅3:11-14절을 보면 세례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회개의 열매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합니다. 그때 요한은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남는 자는 부족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정한 세금 외에는 더 받지 말아라"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고발하지 말고 너희 수입으로 만족하여라." 라고 대답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하고도 평범한  일상에서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여 있고 찍어 내기 위한 마지막 동작에 갔습니다. 도끼를 피하는 길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회개는 미룰 일이 아닙니다.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저절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오신 주님을 하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9-10절) 요한은 소리로 시대를 깨운 불꽃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자세한 것은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침묵을 통해 듣는 소리 
침묵이란 단순히 소음의 부재나 바깥세상과의 소통의 차단이 아니다. 고요한 고독은 참 언어를 빚어내는 시간이다. 고독이란 홀로 한분이신 그분과 홀로 있는 것, 초월자이신 그분을 체험하며 자신이 사랑받는 자라는 정체감을 키워 가는 것을 말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고 어찌 그를 깊이 알 수 있겠는가?  사람들 틈에만 섞여 살 때에는 자신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신학자 에드워드 쉴레벡스(Edward Schillebeeckx)는 “계시종교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침묵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사랑받는 자로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심장을 제거한 것과 같다.”고 했다. 고요한 고독은 나만의 참된 언어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하나님과 진지하게 시간을 보낼 때에  우리는  더 힘 있게 말하며 행동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으며, 너그러운 아량을 베풀 수 있다. 그저 가만히 있어 하나님 됨을 알아 가자. 비대면의 시대에 소리를 듣는 감각을 키우자.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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