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경건에이르는 삶 벧후1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6월 12일 오전 09:41
- e 312
생명과 경건에 이르는 삶
베드로후서1:1-11
순교하기 직전에 기록한 이 편지에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요? 이미 알고 있는 진리입니다. 베드로가 죽고 난 다음에 거짓 선생들이 나와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부인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진리에 더 굳게 서 있게 하기 위하여 신앙의 성숙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수신자들은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라고 부릅니다.(1절) 왜 보배로운 믿음인가? 사도와 동일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단은 특징은 기독교가 지켜온 정통성을 벗어나서 자기들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방법’으로 구원 받는 길을 제시합니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은 동일한 믿음“이 아닌 것은 결코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사도들이 전하여 준 것이요 더하거나 뺄 것이 없는 완전한 복음입니다.
험한 세상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신비한 능력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며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도 신비한 일입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 흘러가는지 모르는 것 같은 일이라고 하셨습니다.(요3장)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거룩한 삶이란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8가지의 덕목을 길러나가야 합니다.5-7절) 기초는 믿음이며, 지식이 있어도 절제가 없으면 죽은 지식이 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있어야 경건한 삶을 살 수가 있고, 그 경건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나타나야만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사랑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날마다 “더하는”(7절) 신앙, 실력을 키워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이런 변화는 몇주나 몇 달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변화는 지속적이고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택하심을 굳게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기 이전에 벌써 선택하셨습니다. 선택하신 우리에게 복음을 들려 주시고 성령의 역사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학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면 .넉넉히 주시리라”(11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11절) “영원한 나라”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로마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만이 영원합니다. 이 약속과 영광스러움을 아는 사람은 부끄럽지 않도록 그 나라에 넉넉하게 들어가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보배로운 믿음을 땅에 묻어 두지 말고 믿음으로 힘써 행하여 날마다 확신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택하신 자를 결코 놓지 않으십니다. 내가 주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붙드셨기에 우리의 구원은 절대 안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은 누구도 빼앗지 못하며 이 믿음으로 넉넉히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단방약(miracle drug)은 없다
경험 많고, 환자를 사랑하는 의사는 환자들에게 가능한 ‘센 약(strong medicine)’을 처방해주질 않는다. ‘병의 악화’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처방(weak medicine)’만으로 그치고, 몸이 스스로 병을 이길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런 처방은 약효가 금방 나타나지 않기에 환자들에게는 인기가 없고, 유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단방약(miracle drug)’을 처방해줄 유능한(?) 의사를 찾는다. 사실 ‘단방약’이란 없다. ‘센 약’만 있을 뿐이다. ‘센 약’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약이 듣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성화’에 있어서도, 사람들은 ‘센 약’의 환상을 갖고 있다. ‘율법주의’ 뭉둥이로 사람들을 겁박한다. ‘은혜로 되어지는 성화’는 속도를 감지하지 못할 만큼 더딜 수 있으나 느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성화를 이루고 계신다. 아멘
-오늘아침- 유튜브방송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