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갈3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3년 12월 2일 오전 09:28
- e 604
아브라함의 믿음, 우리의 믿음
갈라디아서3:1-18
갈라디아 교인들은 할례, 안식일, 절기에 대해서 모르고도 음만 듣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시작했고 예수 믿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은혜만 가지고는 뭔가 부족한 것처럼 보여서 할례를 받기 시작합니다. 은혜로 시작된 것이 육체로 전락하였습니다. 바울은 탄식합니다. 우리 앞에는 십자가가 너희 눈앞에 보지 않는가?(1절)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보게 되고 그런 나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다는 것을 알됩니다. 심령이 복잡해질 때에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면 다 풀립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습니다. (2절) 죄인이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되어지는 신비로운 일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께서 예수가 믿어지게 하시고 확신을 주심으로 믿은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성령으로 시작했는데 육체로 마치려 하는가?(3절) 율법을 행함으로 자신의 의를 삼으려고 할 때에 성도의 아름다운 영광과 존귀함을 다 잃게 되고 종교인이 되어서 종교 놀음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5절) 바울은 2절의 물음을 다시 반복합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믿음이 오늘 우리의 믿음과 동일한 것입니다.(6-9절)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롬4장1-23까지의 말씀을 자세히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을 때에 그를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도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행위로서가 아니라 믿음을 의로 여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않은 자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롬4:5) 우리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동일하며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10절) 인간이 율법에 기록된 모든 일을 항상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 자기를 의롭게 하고자 하는 자는 결국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선함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모든 행위를 무너뜨립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13절) 바울은 사람의 예를 들어 말합니다.(15절) 사람과의 약속도 소중히 지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약속이 먼저입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면 안됩니다. 약속과 상관없이 소신껏 잘하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따라 약속을 바라보고 신뢰하고 그분을 믿을 때에 구원을 주십니다. 그 약속의 주인공이 누구냐?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사는 한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율법 앞에서 흠이 없을지라도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말하기를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다.(빌3:6) 자신은 스스로 생각해도 자책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 했다. 이런 사람이 정말 드물다. 바울이 예수님을 알기 전에 얼마나 완벽한 종교인의 생활을 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가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다음에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의의 옷은 당장 벗어 던져야 하는 누더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오늘아침- 유튜브[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