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울의 재판 (4)
사도행전25:6-12
바울이 2년 동안 감옥에 있었으나 재판의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벨릭스 총독에서 베스도 총독으로, 바뀌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로마까지 가야 있어야 할 몸인데 2년 동안 감금되어 있는 그의 심정을 어떠했을까요? 그가 감옥에서 여러 권의 성경을 썼지만 그런데 그 옥중서신 가운데 가이사랴 감옥에서 쓰여진 것은 하나도 없이 그냥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성경을 쓸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는 뜻이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기도하며 울부짖으며 지내지 않았을까요?
요셉이 형들에 의하여 팔려 애굽의 노예가 되고 그것도 모자라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시간을 보낼 때에 성경은 ‘형통’이라고 했습니다.(창39:2,23) 형통하려면 안 팔려 와야 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안 가야 되는 건데 성경의 상황은 분명히 ‘형통’입니다. 형통이라는 말이 ‘꿰뚫다, 관통했다’ 의미인 것처럼 오늘의 고난은 하나님의 목표와 맞닿아 있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그냥 고향에서 살았다면, 보디발 집의 집사장(執事長)이 되었다면 애굽의 총리가 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벨릭스 총독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부임을 하였습니다. 부임 3일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유대인들은 총독이 바뀐 것을 계기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이송을 시키도록 해서 이송 도중에 바울을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서 바울을 다시 한번 심문하여보고 문제가 있다면 예루살렘으로 후송하겠다고 합니다. 베스도가 예루살렘 일정을 마치고 10일 후에 가이사랴로 돌아오자마자 유대인들과 함께 재판을 엽니다. 유대인들의 고소와 바울의 변증이 진행됩니다.(7절) 유대인들이 재판정을 둘러 선 것을 보면 수가 많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수를 동원하고 거짓말을 동원한다고 할지라도 진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말도 안되는 고소 내용에 대하여 감정을 드러내며 변호하지 아니하고 담담하게 자기 변호만을 할 뿐이었습니다.“가이사에게나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8절) 바울이 로마 황제에 대하여 죄를 지은 일이 없다는 주장은 처음입니다.
베스도가 바울에게 재판 장소를 예루살렘으로 바꿀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바울은 아주 단호하게 베스도의 청을 거절하고(9절) 로마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며 로마에 가서 가이사에게 직접 재판을 받겠다고 합니다.(10절) 한 마디로 말하면 여기가 자신이 죽을 자리가 아니라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죽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어떻게 어디에서 죽을지를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아름다운 죽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죽음은 내가 선택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지막을 위해서도 기도해야합니다. 바울의 말에 총독도 “너는 가이사에게 갈 것이다” 결론을 짓습니다. 베스도로 왜 자기가 그렇게 하는지 모를 정도로 재판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베스도도 하나님의 일에 협조하는 결과로 일을 매듭을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로마도 순간 이동하게 하지 않으시고 차근차근 과정을 거쳐서 가게 하십니다. 이 모든 과정을 우연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하고 합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과정 없는 결과
과정 없는 결과란 있을 수가 없다. 100층 높이의 건물이 완공되었다면, 100층 아래쪽으로 1층부터 99층까지가 지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단 한층이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최고 99층의 건물일 뿐 100층 건물일 수는 없다. 화요일은 월요일이 마쳐야 되며, 여름은 봄의 뒤끝에야 찾아오는 법이다. 과정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창조하실 때 첫날 가장 먼 저 짓지 않으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셨다. 과정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