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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에흐르는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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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에 흐르는 저주?>

한동안 우리나라 교회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라는 책이 돌아다녔었다. 선교지에서 경험한 일들을 성경을 가지고 꼼꼼하게 검증하지 않고 흥분해서 마구 떠들다가 결국 오류가 드러나서 지금은 거의 폐기 처분된 가르침이 되었다.

하지만 성경을 읽다가 보면 그와 유사한 일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엘리의 경우이다. 엘리는 자녀를 개차반으로 키운 결과 두 아들이 제사장이 되어 성전과 제물을 모독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이게 사형에 해당하는 두려운 죄악이었으므로 엘리는 그 문제를 매우 엄격하게 처리했어야 한다. 그런데 엘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엘리의 잘못의 본질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은 두려운 것이었다. 

“삼상 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이렇게 엘리의 집안에 하나님의 저주가 선언되었는데, 이 저주가 성취된 것을 열왕기서 저자는 꼼꼼하게 고증하여 기록해 놓았다. “왕상 2: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엘리 시대에 선언된 저주가 사무엘, 사울, 다윗을 거쳐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취된 것이다. 

반드시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경우들이 또 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를 허무셨을 때 여호수아가 거기에 이런 저주를 걸어 놓았다. “수 6: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그런데 왕상 16:34에 이런 기록이 있다. “왕상 16: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관하여 선언해 놓은 저주가 그로부터 수 백 년 이 지난 후 아합 시대에 성취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요시야의 개혁과 관련하여 다시 등장한다. 북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에 얽힌 이야기인데, 여로보암은 자기의 왕권 유지를 위해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유월절까지 고쳐 가면서 백성을 예루살렘에 못가게 막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유대에서 한 선지자를 보내 여로보암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게 하셨다. 그 선지자가 선언한 것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왕상 13: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그런데 실제로 요시야가 개혁을 단행할 때에 이 일이 성취되었다. “왕하 23: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여로보암에게 선언된 저주의 말씀이 수 백 년이 흐른 후에 성취된 것이다.

이 세 가지 경우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대하여 저주를 걸어 놓으시면 그것은 세월이 흐른 후에 반드시 성취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여 계시면서 역사 전체를 통치해 가시는 분임이 드러난다. 또한 이런 계시의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악에 대한 정당한 보응을 해나가시는 과정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다윗의 경우, 그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형벌을 선언하셨다. 다윗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는 사하셨다. 그러나 그와 그의 가문에 선언된 형벌까지 제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윗은 그것을 전부 당했고 그의 가문에서는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얼마나 무서워하고 피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 34: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형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민 14: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신 5: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반복되는 이 경고의 말씀을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하는 신자라면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은 구약에서 그렇게 하셨다면 오늘날도 그렇게 하시는 까닭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는 내리시는 벌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벌은 삼사 대까지 내려가지만 은혜는 천대까지 내려간다고 되어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내리실 벌을 반드시 내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에스겔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후손이 의롭게 살아도 조상들의 죄 때문에 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신약시대 유대인들에게도 있어서,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되었느냐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요 9:2).]  이에 대해 에스겔은 이렇게 대답했다. “겔 18:19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는도다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반드시 살려니와 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다시 말해서 각 사람은 자기의 행한 바에 의해서 벌을 받지 조상의 잘못 때문에 후손이 벌을 받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모순되어 보이는 듯한 가르침은 예정과 자유의지라는 해묵은 논쟁을 일으키지만,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벌의 저주가 각 사람의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로 하셨다면, 그 사람이 복 받을 일을 해서 복을 받는 것이고, 어떤 사람이 벌을 받기로 되어 있다면 그 사람 자신이 벌 받을 일을 해서 벌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이나 저주를 내리기로 하셨을 때, 복이나 저주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그런 결정에 의해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이와 유사한 말씀이 또 등장한다.

“신 24:16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렘 31: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의 완전성을 주장하면서 이렇게 마땅히 받아야 할 벌까지 면제된 것처럼 가르치는데, 성경은 전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동시에 하나님의 이 벌이 불신자에게는 오직 형벌의 의미만 가지지만 신자에게는 사랑의 매가 된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큰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절대로 면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리어 더 큰 은혜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의 죄는 사하시지만 그들의 받아야 할 벌은 다 받게 하심으로 자녀들이 정신 차리고 믿음에서 진보하게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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