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판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0년 8월 22일 오전 08:27
- e 235
하나님은 우리가 바른 방향을 잡기를 원하신다.
(고전9: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 한 척이 침몰하게 되었다. 모두가 구명보트에 옮겨 탔지만 한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구명보트는 빨리 출발해야 했으나 한 명이 오지 않아서 출발할 수 없었다. 절박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던 사람들은 한 사람이 오지 않자 화를 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성난 그들앞에 그 한 사람이 나타났다. 무엇을 하다가 이렇게 늦게 왔냐고 화를 내는 무리들 속에서 꼭 쥐고 있던 손바닥을 펴보였다. 거기에 있었던 건 나침반이었다. 지금은 코로나 19의 시대기에 수도권지역의 교회에선 비대면 예배만 가능하고 모든 모임이 일체 금지되었다. 이럴 때 크리스챤들이 찾아야 할 나침반은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침반이 없던 시절에 사막을 여행하던 탐험가들과 바다를 여행하던 선원들은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았다. 별자리는 일정한 주기를 따라 변하는 것이지만 북극성만은 일주운동의 범위가 작아서 거의 같은 자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기준점으로 삼을 수가 있었다. 게다가 북극성은 매우 밝기 때문에 날씨가 쾌청하지 않아도 찾기에 용이했다. 사막에서든 바다에서든 나침반이 없을 때는 북쪽에 떠 있는 북극성만 찾을 수 있다면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고 한다.
우리의 인생에도 북극성과 같은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리스도와 성경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신앙을 바로 잡지 못하고 힘들어 할 때 성경을 펼치고 그 안의 그리스도를 바라 보아야 한다. 길을 잃었을 땐 북극성이나 나침반 같은 올바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준만 바로 알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다. 크리스챤은 길을 잃었을 땐 지체 없이 성경을 펴야 한다. 그리고 기도로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함경북도 성진시 앞바다에는 자석광구가 있어서 그곳을 지나가던 배가 자주 침몰하거나 큰 위험을 겪는다고 한다. 항해하던 배가 그 근방에 오면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방향을 잡을 수 없게 되고, 방향을 잃고 배회하다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한다는 것이다. 나침반은 철광이 많은 곳을 통과하거나 해저에 큰 철물이 있을 때에는 기능이 정상적으로 발휘되지 않게 된다. 인간이란 작은 배가 인생항해를 할 때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양심이다. 그러나 물욕이라는 자석 광구나 명예욕이나 권력욕의 철광 사이를 통과할 때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또는 성욕이라는 해저의 큰 철물 위를 통과할 때 좌초되거나 큰 어려움을 당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나침반에 자화방지장치를 하듯 양심이라는 나침반에 신앙으로 자화방지를 완전히 하지 않았다면 그런 재물이나 명예, 권력, 또는 성욕의 자석 광구에 접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항구에 정박할 때 배는 밧줄을 부두에 묶어야 한다. 배가 출발 할 때는 밧줄을 풀러야 나아갈 수 있듯이 우리 죄의 밧줄을 끊어 내어야 앞으로 갈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옛날 아프리카 선교사를 꿈꾸던 조지 스미스라는 청년이 있었다. 스미스는 자신의 가장 귀한 시절인 청년의 때를 오직 선교를 준비하는 일에 바쳤다. 그 결과 선교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좋은 후원자들까지 만나 아프리카로 별 탈 없이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도착한 나라에서 정부의 미움을 받아 몇 달 만에 강제로 추방을 당했다. 추방당하기 전까지 조지가 전도한 사람은 딱 한명 뿐이었다. 그래서 고국으로 와 다시 선교를 준비하던 중 조지는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믿지 않는 사람뿐 아니라 믿는 사람까지도 조지의 죽음에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조지가 전도한 그 딱 한 사람이 그 지역의 영적인 지도자가 되어 일생동안 만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전도했다. 이 놀라운 결실은 조지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뜻과 방법은 인간이 작은 이성으로 쉽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 노력에 비해 결실이 없다 해도 결코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멈춰서는 안 된다. 나중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크리스챤은 가까운 앞의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있는 것 까지 보아야 한다. 반드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관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여. 양심을 버리는 파선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은 성경을 나침반으로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