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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들을 정죄하시다 마태복음11: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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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들을 정죄하시다
마태복음11:20-30
이 세대를 비유하시기를 "마치 시내 광장에 앉아 서로 노래를 주고 받는 아이들과도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 때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장송곡을 불 때 너희는 울지 않았다“고 하십니다.(16절)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귀신을 내어 쫒으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하시는 것을 보면서 도무지 반응이 없는 도시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 일을 우상의 도시인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셨다면 저들도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소돔 고모라에게 가서 행하셨다면 그 도시도 심판을 면하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적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는가? 얼마나  많이 성경을 배웠는가 하는 것보다 어떤 반응을 하였는가? 어떻게 응답하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울어도 함께 울지 아니하고 마음을 닫고 있는 도시를 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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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는 이유는 어린아이와 같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그 사람들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울기도 하며 웃기도 하며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볼 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다.(25.26절) 스스로 다 알고 있다고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무표정으로 듣고 있는 사람들을 거절하십니다. 진리를 숨기십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고 응답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기뻐하십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늘의 비밀을 아낌없이 보여주시고,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26.27절) 날마나 갈급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시고 뜨겁게 응답하시면 하늘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은혜를 반드시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두 마리의 소를 한데 묶어서 한 멍에를 메게 했습니다. 초짜 소들은 노련한 소와 함께 멍에를 매면, 요령 있게 쟁기와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율법이 아닌 복음의 멍에이기에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편하고 가벼운 멍에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사랑으로 짐을 지면  결코 힘들고 무겁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걸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단지 죄의식의 짐만을 지워주었기에 율법을 지키는 일이 너무나도 무거웠던 것입니다. 예수께로부터 참된 쉼으로의 초청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집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이 구절을 언급하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배우는 일은 무거운 짐이 아닌, 날 수 있는 날개가 된다.” 배우는 것은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쉼과 안식을 내 안에서 계속 유지시키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배움은 짐이 아니라, 놀이처럼 쉼과 평안과 흥미를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나아가 즐겁게 배우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마음의 쉼을 누리는 인생을 약속해주십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나 혼자 지고 가면 무겁고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과 같이 지면 쉽고 가볍습니다. 걱정할 것이 무잇입니까?  주님은 인생의 짐을 지고 가는 자를 초청하시며, 주님은 우리가 맡겨 놓으신 짐을 무겁다고 하지 않으시고 가져가기에 ,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 자는 깃털처럼 가벼운 참 쉼과 안식을 얻게 됩니다(28-29절) 주께로 나아오시면  참된 쉼과 안식이 있습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자세한 것은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죽은 종교에 지쳐 있습니까?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Leo Tolstoy)는 15세까지는 교회를 잘 나갔다. 그러나 18세 되던 해에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친구의 말이 진리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는 ‘종교는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종교를 버리고 제멋대로 자유롭게 살다가 55세에 이르러 주님께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품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예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발견했다.”라고 그의 신앙론에서 고백했다. 주님께 온다는 것은 단순히 기독교를 나의 종교로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종교는  사실 인간의 만들어낸 것이 맞다. 자기 스스로를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계시(revelation)’이고 ‘사실(reality)’이다. 종교를 갖는다고 생각하게 되면 종교는 또 하나의 짐이 되고 만다. 모든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궁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해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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