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까?
베드로전서4:1-11
예수께서 육체의 고난을 당하셨음을 기억하고 우리도 마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1절)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건지기 위하여 자신을 드리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이 자취를 따르기 위하여 자신을 버릴 각오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죄를 지을 생각도 사라집니다. “죄를 그쳤음이라”(1절) 즉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 보다 남은 육체의 때를 주님을 따라가는 일에 전심전력하면 죄를 이깁니다. 마음의 갑옷을 입고 영적인 전투중에 있을 때에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군인은 갑옷을 입으면 군인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으며 마음대로 돌아 다니면 적에게 노출이 됩니다. 마음의 갑옷을 입고 살면 죄를 그치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서 30년 초반의 짧은 때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다 이루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잠깐 발을 붙이고 삽니다. 육체의 남은 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붙드려 살 겨를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어떤 생활을 했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2절) 죄에 이끌려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합니다.(3절)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방탕한 생활로 세월을 허송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혼자만의 욕심을 채우는 길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을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우리에게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롬12:1)고 하셨습니다. ‘영혼’이 아니고 ‘몸’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몸을 가지고 존재하는 시간을 ‘육의 남은 때’를 땅에서 재미 보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뜻을 따라 가기 위하여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지나간 때는 예수 믿기 전은 지나간 때이고, 예수 믿은 이후는 육체의 남은 때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왔던 삶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평가를 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5절) 우리가 말없이 주를 위하여 살아왔던 것들에 대하여 분명한 평가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살아 있는 날에 무엇보다도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으로 허다한 죄들을 덮으며 살아야 합니다.(8절) 사람은 ‘사랑’ 만큼 성숙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을 가진 분량만큼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미숙하고 사랑이 없는 사람은 자기 유익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부모, 형제, 자식도 모르는 무서운 사람이 되고 맙니다.
말세에 더욱 힘쓸 것은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다양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답게 섬기는 일에 써야 합니다(10절)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자기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많은 금은 보화를 주님께 드렸고, 백성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을 때,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역대상 29장 14절) 봉사하는 자들의 약점은 '자기가 봉사하는 것처럼 하는 것' 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교회에 유익을 끼치게 됩니다.(11절)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어떻게 마무리하시겠습니까?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더 세한 것은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세기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조국 이스라엘로부터 대통령직을 제의받은 적이 있었다. “국회는 만장일치로 당신을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했으니 조국을 위해 봉사해주십시오” 그때 아인슈타인은 이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기를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가르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통령직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은사를 더 소중히 여긴 것이다.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수상이 어느 날 갑자기 수상직을 사임했을 때 기자들이 이유를 물었다. 그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제 나는 키부츠 땅콩 밭으로 갑니다. 수상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땅콩 농사는 아무나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대로 살기 위해 수상직을 버리고 평범한 농부로 돌아간 것이다. 모두는 하나님나라의 청지기로 부름을 받았다. 묻어둔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녹 쓸어버린 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은사가 없다. 나는 교회를 위하여 할 일을 없다.”고 생각한다. 할 일이 있다. 새해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고민해보자.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