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영광을 돌릴지어다 시96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4월 17일 오전 10:07
- e 11
합당한 영광을 돌릴지어다
시편96:1-13
새 노래는 곡조가 새로운 신곡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새 정신으로 새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인생의 오랜 짐을 다 덜어내고 모든 결박에서 풀어 주신 하나님께서 감사하여 부르는 승리의 노래입니다.(1절 고후5:17)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르는 새 노래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불렀던 노래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구원을 감격으로 보르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쾌락을 위하여 부르는 노래였으나 지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예배하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새의 노래를 들어보라! 소리 하나하나가 아름답습니다. 새소리를 폭탄 터지는 소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 소리들을 받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벌레소리 하나하나를 들어보라! 얼마나 아기자기한가? 그것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낮은 낮에게 밤은 밤에게 그 지식을 전한다고 하였습니다.(시19:2) 모든 태양아래 존재하는 만물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드러내십니다.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하팔지라어다”(2절) 찬송은 선포하는 선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고, 간증이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드러내는 선포입니다. 구원을 모든 민족에게 전할 것을 명하십니다.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7절) ‘영광’이라고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봇’(דבכ)이고 헬라어로 독사(δοξα)인데 카봇과 독사의 개념만 제대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성경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영광은 ‘무겁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영광과 위엄은 가볍게 다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영광이 반대어로 ‘이가봇’ 즉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 ‘가벼움’입니다. 그렇게 가볍게 드려지는 예배는 영광이 안됩니다.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지 않는 것입니다. 성전자체가 영광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거기에 임재하셨기에 성전이 귀합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보이지는 않았고 구름, 땅 흔들림, 지금 보면 화산폭발과 같은 현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함을 카봇(דבכ), 독사(δοξα) 이외에 다른 말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영광과 권능을 돌리라고 합니다. “영광”이라는 말이 얼마나 놀라운 단어입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임재하심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 임재하심으로 나의 기도가 응답되고, 임재하심으로 하늘의 평안을 경험하고, 임재하심으로 신비를 경험하게 되고, 임재하심으로 모든 창조물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되고, 임재하심으로 음악을 통해서도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되고, 임재안에서 영광과 권능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7.8절) 예배는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과 존귀함에 합당하게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외모와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가지고 나와 예배해야 합니다.(9절)
그는 듣는 척만 했다
나이가 지긋이 든 의사와, 젊은 의사가 있었다. 저녁 퇴근시간이 되면, 젊은 의사의 옷매무새는 흐트러지고, 기진맥진한다. 그러나 나이 든 의사는, 항상 생기가 넘친다. 한번은 궁금한 젊은 의사가 물었다. “종일 환자와 대화하는데, 선배님은 전혀 지치지 않으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때 나이 든 의사가 말했다. “그건, 간단하네. 나는 전혀 듣지 않거든”이라고 했다. 들어주는 척만 했다는 것이다. 듣는 것은 가장 큰 일이고, 짐이고, 고역이고, 피곤한 작업이다. 병원에 가면 진료시간이나 상담시간이, 길지 않게 정해져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 같지 않은 투정을, 다 듣고 계시고 응답하신다.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리시니..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주만 바라볼지라”
-오늘아침- 유튜브방송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