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시도 터이르시고 호2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10월 4일 오전 08:31
- e 89
만나시고 타이르시고
호세아2:14-23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찾아오셔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들을 타일러서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14절) 설득하고 타일러서 이끌어내고 계십니다. 13절의 이스라엘이 “나를 잊어버리고”와 하나님이 “타이르다”사이에 이스라엘과 상황과 하나님의 사랑을 대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을 수 있으나 그분은 우리를 잊지 안으신 것입니다.(사49:14~16) 남편을 떠나서 부정한 생활을 하고 있는 고멜을 타일러서 아무도 없는 들판으로 데리고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설득하고 있고 장면을 연상합니다. “거친 들”은 성경학자 델리취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는 광야라고 했습니다. 왜 남편이 아내를 거친 들로 데리고 갔을까요? 조용히 1대 1로 만나서 그 문제를 다루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누가 이런 배신과 쓰라림과 상처를 안고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하고 불러야 되는데 자기도 모르게 ‘바알’을 부를 정도로 영적으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불렀지만 마음으로는 바알에게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너 입에서 다시는 바알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하십니다.(16.15절) 오직 하나님만을 부르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열정적으로 진실로 사랑하십니다. 신앙이 냉랭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형식적인 의무감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이미 죽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뜨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끗한 신부와 같이 여기시고 장가를 들겠다는 말씀입니다. “장가를 들겠다”(19.20절)고 3번씩이나 말씀하시는 것은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맞아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나를 타이르시고 조용히 1:1로 만나시고 회복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회복시켜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죽음의 골짜기에서 소망의 문을 삼아주시고, 처음 만나서 사랑할 때 처럼 그 사랑을 회복시키고자 하십니다. 이제는 다시는 내 남편을 바알이라고 하지 않게 하시고 당당히 하나님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21-23절에 “응답하리라”고 5번을 연거푸 말씀하십니다. ‘아나’라는 이 말은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하늘에서 땅으로 응답이 임합니다.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하나님의 응답이 땅에 임하고 땅은 풍성한 곡식과 열매로 응답합니다. “이것들이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이스르엘이란 말은 하나님이 심으시고 하나님이 거두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니 심판의 장소가 축복의 장소로 변하게 됩니다, 회복되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타이르시는 말씀을 듣고 돌아오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이런 역전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이런 거친 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1:1로 직면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욱더 진지하게 주께 가까이 나와 교제를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내 얼굴속에 있는 그리스도
라파엘로가 그린 [강복(降福)하는 그리스도]의 그리스도는 라파엘로 자신을 닮아 있다. 이것은 불경스러운 일일 수 있고 신성모독에 해당할 수도 일이 될 수 있다. 라파엘로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리면서 중세의 성화처럼 신성화된 얼굴이 아닌, 길거리에서 혼하게 마주치는 지극히 평범한 얼굴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렸다. 라파엘로는 자신을 닮은 그리스도를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그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자신도늘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생명력을 담은 예술가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 희망을 담아 자신의 자화상속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렸을 것이다. 라파엘로의 얼굴을 통해서 캔버스에 성육신하셨다.
-오늘아침- 유튜브방송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