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의 만남


나 같으면 이렇게 하겠다 욥기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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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으면 이렇게 하겠다
욥기5:1-16
엘리바스의 욥을  향한 충고가 그치지 않습니다. “계속 너의 결백을 주장한다면 하나님은 네가 아무리 부르짖어도 틀어 주지 않을 것이다. 네가 죄인임을 자백하기 전에 누구도 너를 변호하지 아니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1절) 엘리바스는 계속해서 욥의 죄인 됨을 추궁하고 있습니다. 욥이 자신이 태어났음을 저주하고 생존을 부정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엘리바스가 입을 엽니다. “분노가 미련한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2절) 다른 사람은 저렇게 잘 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렵냐? 다른 사람의 형통을 시기하고 분통을 터뜨리면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사람이 재난을 당하면 처음에는 탄식하고 슬퍼하다가 주변에 있는 사람을 원망하다가 분노로 변합니다. 마음이 거칠어집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아야 될 이유는 그들이 갑자기 황폐하고 어느 순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시73:19) 

100년 된 소나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소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거기 있을 뿐입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을 감고 호박덩쿨이 그를 감고 올라옵니다. 호박 넝쿨이 자신을 휘감더니 열매까지 주렁주렁 열립니다. 그런데 겨울이 됩니다. 찬바람이 불자 넝쿨은 다 부스러지고 열매는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나버립니다. 그러나 소나무는 소나무는 푸른 잎을 유지하며 찬바람 속에서 당당히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잠깐 잘되다가 없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천국에 이르기까지 오래오래 푸르러야 하는 존재입니다. 악한 자가 잠시 더 잘 될 수 있으나 그것으로 마음 상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며 성실로 식물을 삼아야 합니다.(시37:3)  

 재앙이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흙에서 먼지가 일듯이 수증기가 올라가면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지듯.. 이 땅에서 지은 죄가 하늘에 닿아서 지금 재앙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재앙은 인간이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 불이 불티를 하늘 높이 날리듯 그렇게 인간이 자초하는 것”(6절.현대인성경)이라며 욥의 재앙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주의 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되 숙명론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자네라면 나는 하나님을 찾겠네”(8절) 친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짓눌려 숨조차 쉬기도 어려운데 자신이 전수받은 신학과 지혜, 심지어 영적인 체험까지 총동원하여 해석하고 심판하고 정죄하면서 해결책까지 제시합니다. 죄를 다 뉘우치고 하나님께 되돌아가야 한다는 충고합니다. 일반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욥에게는 적절한 말은 아닙니다. 옳은 말이라고 해서 다 시의적절(時宜適切)한 말은 아닙니다. 지금 욥에게 필요한 것은 입을 다물고 함께 있어 주고 아파하는 것이 이 고난을 빨리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욥을 나무라고 정죄하며 심판까지 예고합니다. 말을 심하게 해놓고 상처를 받으면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라고 변명합니다. “나니까 이런 말을 해주는 거야” 그러면서 상대방을 교묘하게 굴복시키고 조종하려고 합니다. 이런 가스라이팅(gas lighting)은 반드시 피해자를 만들어 냅니다. 그냥 아픔을 공감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절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한 길이며 또한 나를 위한 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충고할 때 진리위에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더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회복시키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더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진짜 공감 가짜 공감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이 인간의 입장에서 공감하신 사건이다. ‘공감’을 영어로 sympathy 라고도 하고 empathy인데 이 두 단어는 헬라어로 그리스어로 (슬픈)감정, 연민을 뜻하는 pathos에서 유례하고 있다. 같은 일을 같이 느끼는 것이 sympathy인데 동감으로 많이 번역 한다.  empathy는 좀 더 깊은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내가 너보다 더 심한 것도 경험해 봤는데~”라는 말은 가짜 공감에서 나오는 말이다. 세상의 어떤 경험도 같은 경험은 없다. 경험은 저마다 느낌도 다르고 강도도 다르다. 그러므로 어설픈 공감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온전히 공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을 유지할 때 그래도 어느 정도의 공감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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