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구원의 불씨가 되다 :1-14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1년 4월 5일 오후 02:12
- e 1183
고난이 구원의 불씨가 되다
:1-14
출애굽기는 앞에 있는 창세기와의 연결이며, 이어지는 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애굽에서의 탈출과 시내산에서의 예배와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한 여행이 중요 주제입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 사이 약 400여년의 기간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야곱이 굶주림을 피하여 70명의 가족들 데리고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주님은 그 예언을 이루기 위해 요셉을 애굽으로 먼저 보냈습니다.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 이주한 것은 요셉의 초청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름진 나일강가의 땅을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한 민족으로 키우는 못자리 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400년 동안 한 가족이 이제는 한 민족을 이루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키운 그 민족을 거기서 뽑으셔서 가나안 땅에 골고루 심어서 그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기거하던 땅은 이미 원주민이 있었고 70명의 가족조차도 살아갈 수 없는 메마른 땅 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야곱의 가족들이 가나안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가족들은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누구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넓은 애굽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 하게 하십니다. 차근차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사건의 이면에 하나님의 큰 손길이 있습니다. 5절에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하나님은 요셉을 이미 심으시고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바로 왕이 환영을 받으며 그 땅에 이주 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다 죽었고” (6절 후반) 죽었다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애굽에 정착한 1세대가 다 죽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잠깐 자신들의 역할을 하다가 떠나가는 것입니다. 삼하14장 14절 “우리는 필경 죽으니..” 욥30장 23절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정한 집으로 돌려 보내시이다” 전8:8 “죽는 날을 주장할 자가 없고” 인간은 다 죽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고 역사가 중단 되는 건 아닙니다. 어떤 배우가 영화의 한 장면을 찍고 사라지지만 영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촬영은 계속됩니다. 내가 이 시대에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납니다. 애굽 사람들을 위협할 정도의 숫자가 되었습니다. 7절에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더욱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이전 개역성경에 보면 7절에 “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번식하다’”(쇠라쯔)라는 단어는 사람에게는 거의 쓰이지 않고 보통 개구리나 물고기 등의 동물에게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개구리와 물고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번성은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이 오늘도 쉬지 않고 번성합니다.
세월이 지나서 요셉을 모르는 왕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유대인들이 번성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인이 잡고 그 곡괭이가 어느 날 갑자기 무기가 되어서 자기들을 칠까봐서 두려워합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큰 일 나겠다고 긴장합니다.(10절) 교회가 부흥하면 세상에 위협을 느끼고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으나 결코 커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계속 됩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메시지를 자세히 들으시려면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으로 들어오세요.
주권과 섭리를 믿는다
사람의 미래는 알 길이 없다. 나의 운명도, 나의 장래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이다. 그 점을 가장 실감나게 고백했던 사람은 마르틴 루터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불 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증조부와 조부 그리고 내 아버지는 모두 농부였다. 후에 나의 아버지는 광산촌으로 이사를 가서 나를 낳으셨다. 나의 아버지는 장차 내가 광산촌의 읍장이 되는 것을 원하셨다. 그런데 나는 학사학위를 받고 석사가 된 후 학자가 되는 길을 버리고 내 아버지가 그토록 싫어하던 수도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교황과 대적하여 싸우게 되었고 파계한 수녀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누가 이런 일들을 점칠 수 있으며 또 예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의 앞길이지만 나는 그 길을 모른다. 다만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뿐이다. 나에 대한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중에 이루어짐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