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선교사 자녀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여러 선교사님이 관심을 보였다. 이제 기숙사가 필요했다. 당시 학교측에서는 기숙사는 건축비와 운영비가 너무 많이 든다며 꺼렸다.
하나님께 기숙사를 주시든지,5년이라는 선교사 헌신기간도 끝났으니 다른 길을 열어주시든지 해달라고 무작정 매달렸다. 갈등하면서 다른 부르심을 기다리며 94년 여름부터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충현교회 시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이종표 목사님을 만났다. 이목사님은 첫 학기 여름수업 중 자신의 교회에서 내게 수요예배 때 설교하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 분은 설교가 끝난 뒤 우리 교회에 대해 물었다.
“소속이 없는 독립교회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교단 가입은 언제,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저 아직까지 기도중입니다”
“내가 속한 미국 개혁장로교회(RCA) 교단에 가입하지 않겠습니까? 원한다면 안내를 해드리지요”
1년간 기도하다가 RCA 플로리다 노회에 가입 신청을 했고 서류심사가 끝난 뒤 노회에서 시험을 보게 됐다. 그때가 1996년 3월7일이었다. 첫날 저녁시험에 통과한 뒤 정식 회원이 되어 다음날 오전 회의에 참석했다. 그 날 안건 하나가 상정돼 있었다. 올랜도에 있는 어느 땅을 오늘 회의에서 결정한 뒤 판다는 것이었다. 점심식사 이후 회의에서 마지막 결정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올랜도 땅’이라는 소리에 나의 귀가 갑자기 크게 열렸다. “올랜도! 올랜도 어디에 있는 땅입니까?”
주위 목회자들은 “잘 모른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라고만 말했다. 아침 노회가 끝나자 교단 회장에게 달려갔다. “올랜도 어디에 있는 땅을 파시려는 것입니까”라며 흥분해 물었다.
회장은 “올랜도 샌드래익 근처의 땅입니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어 또 물었다. “땅이 얼마나 크지요?”
“1만평 정도 됩니다” 회장이 응답했다. 내가 재차 질문했다. “혹시 그 땅에 100m 이상된 큰 십자가 탑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회장은 “김목사가 어떻게 그 땅에 대해 아시오?”라고 되물었다.
나는 그저 고개만 계속 끄덕이며 “알아요. 제가 아주 잘 압니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강한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혹시 나의 꿈을 위해 예비하신 땅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전율을 느꼈다.
나는 회장에게 “그 땅을 우리 교회에 파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회장은 “김목사 교회에서 그 땅을 살 돈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그래도 당당하게 “없습니다”고 말했다.
회장은 그저 미소만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확신을 갖고 그 땅을 절대 다른 곳에 팔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회장은 “점심식사 뒤 위원회에서 마지막 의논을 하고 그때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점심시간내내 기도했다. 그곳은 내가 1년6개월전에 본 뒤 매일 바라보며 기도했던 땅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아직까지도 그 땅이 팔리지 않았단 말인가!”
드디어 오후 회의가 시작됐다. 먼저 땅을 파는 일부터 진행됐다. 위원들은 나와 아내에게 “잠시 나가있으라”고 손짓했다.
정리=노희경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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