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기도 신학을 통한 바른기도신학에 대하여
「기도의 신학」이란 저서의 제목은 총신대학 학장으로 계셨던 김희보 목사님의 조언을 심사숙고 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기도의 신학」이란 저서를 출판 할 때 어떤 분들이 "기도가 무슨 신학이냐 기도는 무릎 끓고 하면 되는 것이지."라는 말을 할 때마다 무척 힘들었다.
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기도"하는 제목만 붙어 있으면 책, 논문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모든 것을 정독했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출판된 저서 중에 기도신학이란 제목의 저서는 영어 서적 한 두권 정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도"에 관련해서 저술한 책 목록에 들어가 보면 어렵지 않게
「000의 기도 신학」이라는 책들을 발견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도 신학이란 제목에 관심이 많아서 그 저서들을 구입하여 읽어 보면서 각 저자들의
기도 신학에 대한 관점을 또 새롭게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어느 분의 글에 본인의 저서를 읽고서 "기도에도 신학적인 관점이 있구나."라는 글을 쓴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앞으로 훌륭하신 목회자, 신학자들께서 기도 신학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저술을 많이 하여,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오늘의 지상 교회들에게 주시는 "기도 신학"이 자리 잡히고 뿌리 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또한 본인의 저서가 단순한 주기도문을 해설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은 책을 읽어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본 저서가 영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기를 원하는 분들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 일에도 도와주시기를 기도한다.
지금까지 본서를 읽으신 분들 중에는 몇 번씩 읽기도 하고, 금식기도 때마다 읽고, 청년 대학부 교재, 주일학교 교재, 구역예배 교재,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들어
왔다. 본인의 바람은 "기도에도 신학적인 관점이 있다." 라는 것을 한국 교회에 알리고
싶은 것이다.
때문에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기도 신학에 대한 입장을 언급하면서 본인의 C.C.C. 국제본부 사역을 통하여 다소나마 실천적인 기도 신학에 대하여 집을 계속 지으려고 한다.
「기도의 신학」이란 저서를 처음으로 출판했을 때는 구체적인 기도의 내용과 기도 현상 연구의 결과는 저서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본인은 지금까지 기회 있는 대로 신학생들, 목희자, 교회의 특별 집회 등을 인도하면서 기도의 내용 및 현상 연구에 대한 부분을 가르쳤고,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신자와 교회가 되도록 도전을 주려고 노력했다.
"기도 신학"이란 연구를 하게 된 동기는 한국 교회가 기도는 많이 하지만 바른 기도를
드리지 못한다는 점을 많이 대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무분별하고 불건전한 신비
주의 운동 및 이단들의 발생, 은사 중심의 성령 운동, 물질 및 물량주의 성장, 영적인
타락의 현상들이 많이 있다고 간주되었다.
또한 한국 교회가 외식적인 기도, 형식적인 기도만 한다거나, 기도를 무시하고 등한히 하면 자유주의적인 경향으로 흘러가 버리고 말 것이다.
기도를 안 할 수는 없는 것이고, 해야 한다면 바른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러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기도 현상과 내용에 대하여 설문지를 통해서도 정리를 해보았다. 이미 언급한 대로「기도의 신학」에서는 기도 현상과 내용에 대한 설문에서
정리된 것은 다루지 않았고, 기도 훈련의 내용과 실제적으로 다룰 수 있는 주기도문을
강해 형태로 저술했다.
다시 언급하지만 기도 현상과 내용을 연구한 것은 목회자들의 유익과 한국 교회의
유익을 위해 실천적인 면에서 기도 신학이 정립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의 연구 자료에 개혁주의 신학과 바른 기도의 삶을 계속 추가 정리
하려고 한다. 목회자는 섬기는 교회 교인들의 기도 형태나 내용을 임상적인 결과에
의하여 검토하고 바로 지도할 필요가 있다.
본인은 한국 교회가 교단별로 바른 기도 현상과 내용을 종합 검토하여 기도 자세와
내용에 올바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것에 목적을 두고 계속 연구하려고 한다.
개혁주의 기도 신학에서 본인의 기도 신학과의 접촉점을 찾고 이론적인 측면과
실제적인 측면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 이론적인 면
개혁주의 기도의 그 중요성과 필요성은 개혁주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칼빈은
예수께서 기도하기 위해 고요한 곳으로 물러나셨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기도를
“비밀(Secret)스러운” 어떤 것으로 규정했다.
칼빈은 기도란 “원칙적으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의 무수한 염려들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고요함을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개인 기도의 필요성은 개혁주의 저자
메튜 헨리(Matthew Henry)에 의해서도 강조되고 있다. 헌신적인 실천에 대한 영향력
있는 그의 고전 “기도의 방법(A Method of Prayer)에서 메튜 헨리는 기도의 세 가지 상황들을 다루고 있다. 공적기도, 가정기도, 그리고 개인기도들은 모두 하나에 속하며 각각은
다른 것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1640년대 웨스트민스터 총회 때부터 아주 최근까지, 웨스트민스터 예배
지침(the Westminster Director for the Worship of God)은 은밀한 예배 또는
개인예배의 네 영역을 말하고 있다. 즉 기도, 성경 봉독, 거룩한 묵상 그리고 진지한
자기 점검이 그것이다.
예배 지침의 가장 최근판 에서는 이것들이 확대되어 성경 봉독, 기도, 고요히 기다림,
말씀에 대한 묵상, 자기 헌신, 섬김에 대한 서약 등을 포함하고 있다.
칼빈은 "혼자서 개인적으로 기도하기를 등한시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밀한 판단
보다 사람들의 의견을 더욱 존중하기 때문에 아무리 빈번하게 공중기도에 참석한다
하더라도 장황한 기도를 드릴 뿐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개혁주의자들이나 칼빈은영적인 삶께서 개인기토의 중요성과 바른 기도생활을 통한 경건 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칼빈은 영혼의 경건 훈련들을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의 삶에 접목시키려
했다. 칼빈은 복음은 "우리에게 그 분을 따라잡지는 못하더라도 비록 멀리서나마
그 분의 지취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다.
금식은 개혁주의 기도에서 탐심과 방종에 대한 우리의 자연적 경향을 바로잡는
방법으로 경건 훈련을 시켜 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칼빈은 금식에 대하며
은유적으로 묘사했다. 칼빈은 "경건한 사람은 일평생 검소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될 수 있는 대로 금식에 가깝게 사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했다.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는 금식을 개인기도와 연결 시켰다. "금식은
은밀한 기도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 구주께서 당신을 따른 사람들에게 권하신 의무이다. 나는 은밀한 금식이 기도처럼 일정한 방법으로 견실한 과정을 거쳐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게 있어 금식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해야 하는, 그것도 지주 실천해야
하는 의무로 보인다. 금식을 필요로 하는 영적, 육적 상황이많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이나 친구들을 위해 특별히 바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금식을 통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나단 에드워드 이후로 금식은 등한시되어 왔으며, 모든 진정한 경건의 회복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훈련에서 검소함의 한 상징으로 주의 깊게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 개혁 주의자들은 금식과 기도를 통한
개혁주의 기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개혁주의 기도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리차드 박스터는 주장한다. "기도하라!
연구하라! 의논하라! 그리고 실천하라!(Pray, study, confer, and practice)"라고 했고
이들 각각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필수적인 표시이며 다같이 우리를 균형 있는 상태로
유지해 준다고 강조하고 있다.
개혁주의 전통에서의 기도를 다루면서 히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기도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그 해답으로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감사의 주요 부분이며,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고 기도로 당신께
열심히 구하는 자와 이러한 선물들에 감사하는 자들에게만 당신의 은혜와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한다.
칼빈은 기도가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다. 기독교 강요에서 기도에 관한 장이 제일 길다. 기도에 관한 장으로부터 개혁 주의 전통에서 기도가 갖게 되는 의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칼빈은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열거해 주었다. 이러한 이유들" 은 개혁주의 기도 신학(Reformed theology of prayer)을 형성하고 있다.
본인이 기도의 신학을 저술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칼빈에 의하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첫째 : 항상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며 섬기겠다는 소원과 열의가 우리 마음에 언제나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 하나님께서 아실 경우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욕망이나 소원이 우리 마음에
침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셋째 :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은혜를 주실 때 진심으로 감사하며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넷째 : 우리가 구하던 것을 얻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의 인자하심을 더욱 열심히 사모하도록 하기 위함 이다. 칼빈은
이처럼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들을 말해 주었다. 이것들은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로서의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칼빈의 기도 신학은 하나님 중심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변화 시켜 우리의
요구를 채우게 할 것인가 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기도에 대한우리의 문제들을 지적해 보자. 과학시대 물질주의 문화의 시민들에게
기도는 특히 더 힘들다. 기도가 무의미하게도 여겨지기도 하고, 책임 회피를 위한
노력처럼 보인다. 리차드 박스터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에 대해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들 중 하나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잊어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의 바쁜 세계에서 기도는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러나 기도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고, 우리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하나님과 당신의 영혼 사이의 부끄러움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규칙적이고 잦은 기도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한다.
20세기 기도의 주된 장애물의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교제를 피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애쓰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자족성을 증명 하려 하게 만든다.
기독론적 관점에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회복하는 것과 우리가 온전히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회복하는 것, 이 둘 모두가 우리의 개혁주의 유산에서 중요 부분을 차지한다.
리차드 박스터는 기도에서 생명력 있고 의미 있는 기도 양식을 회복하고자 "기도에서의 균형 회복"(the recovery of balance in prayer)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기도에는 네 가지 필요한 균형들이 있다고 강조한다.
1) 기도는 협력적인 동시에 개인적이다. 우리는 협력기도 (cooperate praying)를 통해서
개인 기도를 살찌우는 훈련을 받기 때문이다.
2) 기도는 자발적인 동시에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다.
3) 기도는 음과 가슴의 일이다. 기도는 지적인 동시에 감성적인 필요가 있다.
따라서 기도는 웃음과 눈물 모두를 포함한다.
4) 우리는 말하는 자인 동시에 듣는 자로 기도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규칙적인 기도를 위해 하루 중 기장 좋은 시간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의 깊은
충고를 하고 있다.
둘째:실제적인면
실제적인 면에서의 기도 신학은 주기도문을 통하여 그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주기도문은 성경에서 기도의 축소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하늘 보좌에 계시면서 오늘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롬 8:34) 땅에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삶을 실천하라고 요구하신다.
예수님께서 실천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일을 위해 사역하셨고, 성령 충만하게 사역하셨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인의「기도의 신학」의 주기도문 강해 내용들은 실제적인
하나님의 나라 왕국 성취를 삶 속에 제시하고 있으며, 주기도문의 가르침대로 사는
삶이 기도 신학을 실제적 면에서 실천해 나가는 삶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위에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지상명령 성취와 성령 충만하신 사역을 하셨다고
했는데, 주기 도문에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주기도문에서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간구("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부터 특히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예수님 의 지상 대 명령 성취를 위해 주신
기도라고 여겨진다. 또한 주기도문에서 네 번째 간구부터 마지막 여섯 번째 간구는
성령 충만의 삶과 관련이 있다.
주님께서 이러한 기도의 내용들을 가르쳐 주실 때는 성령 충만하여야만 일용할 양식
앞에서 범죄 하지 않고, 죄에 빠지지 않고, 용서하고, 시험에 들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기도가 바로 삶이 되어야하며, 성령 충만 하여야만이
감당 할 수 있기 때문에 주기도문을 통하여 기도하게 하셨다.
따라서 개혁주의 기도 신학에서 주기도문을 바로 드리기 위해서는 지상명령 성취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면서 그 기도를 드릴 때 그것이 바른 기도이고, 바른 기도
신학의 길로 인도하게 된다.
이처럼 주기도문이 실제적인 기도 신학에 접목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제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접촉점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것은 C.C.C. 국제본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도용「4영리」소책자(Four Spiritual Law)소책자이다.
본인의 견해는 21세기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C.C.C. 선교단체를 계속 축복
하시는 이유는「4영리」소책자와「성령 충만한 생활을 위한 비결」소책자를 통하여
"주기도문"의 삶을 실제적으로 지시하는 기본적인 도구가 준비되었고, 그것을
계속해서 전도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지상 명령 성취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열매 맺는다면 실제적인 기도 신학은 주기도문의 정신과 함께 그 빛을
더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교회가 실제적인 개혁주의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원한다면 바른 기도와
함께 C.C.C. 국제본부가 사용하고 있는「4영리」소책자와 「성령 충만한 생활을
위한 비결」소책자를 교회 안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한다.
한국 교회가 실제적인 개혁주의 기도 운동을 기대한다면 이런 부분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실제적이고 영적인 도구들을 개발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기도드릴 때,
한국 교회는 바른 기도 신학을 통한 성령 충만한 교회 로, 또한 21세기의 선교 주자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사용될 것 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될 때 무분별한 성령 운동이나 무분별하고 불경건한 신비주의 운동,
신비주의 이단. 은사 중심의 성령 운동 영적인 타락들이 사라질 것이다.
바른 "기도 신학"을 통한 바른 "개혁주의 기도"만이 이 시대 이 민 족과 세계의 영적
혼란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서 본인의 저서에 있는 "기도 내용 현상 연구에 대한 설문지”를 통하여
개혁 주의 기도를 뿌리 내리는 기도 신학의 실천적인적용의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바른 전통을 가진 개혁주의 기도 신학이 그리스도인의 심령의 밭에 뿌려지고,
실제적인「기도의 신학」줄기인 주기도문에 담겨 있는 주님의 지상명령 성취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나와서「기도의 신학」열매가 지구촌 가득히
맺혀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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