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수 없는 날들의 메시지)
< 프란치스코의 미소 >
황 용 대
2015년 10월 28일, 바티칸 광장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6만의 신도들로 가득하였다.
모두들 교황 뵙는 기쁨으로 출렁 거리는 분위기였다. 이날은 마침 제2 바티칸 공의회 50주년 기념행사도 함께 하는 날이었다.
(1965년, 나누어지고 분열된 기독교가 이제는 연합과 일치를 이루며 한 형제로서 인정하고 화해의 손을 내민 결정)
이 결정의 의미는 1045년 동방 정통교회와 서방교회의 대분열과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반목질시하든 신 구교 간의 분쟁을 종식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 한국에서는 캐톨릭과 개신교가 손을 잡고 참여한 행사였다. 마침 그해의 한국교회 협의회(NCC)의 대표회장이 된 나는 방문팀의 공동단장이 되어 여행에 올랐다.
예루살렘에서는 유대교, 무슬림, 캐톨릭 예루살렘교회, 동방교회를 공식 방문하였고 환영과 대담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한국에서는 다종교가 공존하면서 싸우지 않고 평화적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에 깊은관심과 칭찬을 하였다.
바티칸 공항에는 교황청 대사가 영접 나왔고 우리일행에 융숭한 저녁대접
까지 하였다.
나의 식탁 자리에는 대사와 캐톨릭 대표인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했는데, 대사와 대주교와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행사 초청 내빈만 200명이 되는데...
교황 알현 대상은 40명만 제한되어 있으니, 한국 대표 자리가 쉽지 않다고 대사는 큰 걱정을 하였다.
김 대주교님은 꼭 교황 알현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우리 팀은 한국 정부가 행정, 재정 후원도 한 공식 방문이기도 하고, 교황께서도 한국을 특히 좋아하시기 때문이라 강조하였다.
어떻든 우여곡절 끝에 3장의 '노란 티켓'이 발행되었고, 이것은 성당 비밀통로를 통과하는 증명서라는 것이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김주교님과 대사 두 분이 엄청 로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요일 행사 시간 2시간 전에 도착, 벌써 광장은 가득 차 있었고 군악대 연주와 음악행사로 식전 분위기가 뜨거웠다.
노란 티켓 세 사람은 성 베드로 성당 지하
비밀통로로 행사장까지 가는 특권을 갖게 된 셈이다.
옛날 카타콤 무덤으로 보이는 좁은 통로는 희미한 전구로 비쳤고 안내자가 없으면 한 발자국도 힘들 것만 같았다. 그중에는 베드로의 시신을 모신 무덤이 있었고 멀리서 작은 유리 구멍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주 강단 가까운 곳에 내빈석이 준비되었고 보안상 일반석과는 구별되었고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정한 시간이 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하자 모두들 일어나 환영하였고, 교황을 태운 유리 차가 회중석을 한 바퀴 돌면서 인사를 하자 모두들 기뻐하며 박수와 환호를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를 실감케 하는 장면이었다.
군악대 연주, 각국 나라 소개, 내빈소개, 교황님의 말씀과 축복기도
(참여한 나라에 대해 구체적인 기도) 찬양 등의 시간이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교황 알현행사 시간이 되었다.
40명에 대해서 일일이 개인적인 대면과 인사를 하는 시간이다.
소위 옛날로 말하자면 황제 폐하를 만나는 엄숙한 자리다.
캐톨릭 신자는 거의 90도 가까운 깊숙한 자세로 경의를 표하지만, 타 종교지도자는 가벼운 고개 숙임과 악수와 인사말씀을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나 역시 교황을 면전에서 대하기는 처음인지라 매우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무엇보다도 격의 있으면서도 다정한 분위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교황께서 내 앞에 서고 나는 환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안내자가 한국 개신교 대표 목사라고 소개를 했고, 나는 인사말로 한국에서 교황님의 인기와 존경심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교황께서는 두 손을 꼭 잡으시고 부드럽고 다정한 표정을 지으시며
"한국에서 캐톨릭이 부흥되고 있고, 개신교도 더 많이 부흥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한 형제입니다."
나는 한국에서 준비해 온 전통 자개로 만든 주기도문이 적혀있는 병풍형의 액자를 선물하였다. 이 선물은 한국 NCC에서 깊이 연구하며 준비한 것이었다. 다시 한번 손을 꼭 잡는 프란치스코의 미소와 따뜻함이 깊은 감동으로 마음속에 스며 들었다.
그 후에 행사장에 앉아서 식이 마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솔직히 내마음에는 찔림이 있었다.한국교계에는 캐톨릭과 반목하면서 함께 할 수 없다는 교인들이 많이 있는데.... (탕자의 비유에서 두 아들이 반목하듯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서로 알아 갈수 있을까?'
나의 생애 기도 사명이었음을 깨달았다.
교황님의 미소 속에 배어져 있는 다정함은 본인이 그렇게 닮고 싶어 하는 프란치스코의 향기를 닮고 있는 것일까?
'청해'라는 호로 된 나의 별칭은 동해 바다처럼 넓고 커다란 가슴으로 모든 것을 품고 싶고, 푸르른 열정과 편안한 미소로 평생을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담겨있는데....
프란치스코의 미소 이미지는, 은퇴를 준비하며 목회 일생을 회고하는 가운데 가장 잊을 수 없는 메시지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