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심판 완전한 회복 예레미아30:12-24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0년 9월 11일 오전 08:26
- e 868
완전한 심판 완전한 회복
예레미아30:12-24
소선지서는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가 계속하여 반복됩니다. 그래서 읽을 때에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심판이나, 회복의 메시지로 한쪽으로 기울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얻은 유다의 상처는 고쳐질 길이 없고(싸맬 약이 없고) 그들의 호소는 변호할 자도 없습니다(13절).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철저히 치르고 있습니다. 누구도 그 고통에서 그들을 건져 낼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시는 징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15절).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완전히 버려두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징계하시려는 목적이지 영벌을 주시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방법으로도 어떤 노력으로도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누구도 그를 편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없도다. 없다”는 말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이 말은 누구도 하나님의 징계와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입니다. 여기에는 약도 없고 습니다. 편들어 줄 자도 없습니다. 죄인이 죄인 편을 들어 줄 수 없습니다. 죄인은 다 자신의 죄로 죽을 뿐입니다. 14절에 크고 수다하다고 말합니다. (14.15절) 크고 수다한 죄로 인하여 인간은 운명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14절을 보면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 15절에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부르짖지 말라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대하시듯 그의 백성에게 노를 부으십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 그 백성을 향한 진노를 잊지 아니 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의 회복하신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잃어버린 장막에 다시 돌아오게 하고 옛터에 세우게 될 것입니다(18절) 그리고 잃어버린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게 하게 하실 것입니다. 19절에 나라를 이룰 백성들이 가득하게 될 것이며 수가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19절중) 하나님의 백성에게 존귀함을 회복시켜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19절 후반에 멸시 받게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대적을 제거하겠다고 하십니다. 21절에 나라의 왕을 다시 세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백성들을 다스릴 왕이 백성 가운데 나오게 될 것입니다. 왕이 유대인에게 나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먼저 오셨습니다. 21절에서 보면 말씀하십니다. 그들 가까이 오십니다.(21절) 이제는 주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가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예수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십니다.(계21:3-4절)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다 부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의롭게 하시고 우리를 의롭게 보시며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우리를 향하여 너는 내 아들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에 대한 심판은 회복이 불가능하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심판은 반드시 치료와 회복을 통하여 새롭게 하십니다. 성도에게 오는 고난은 우연은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칙은 그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이를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22절)
신석장로교회 박근상목사
오늘 말씀을 유튜브 [박근상목사]에서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절벽에 서다
절벽이란 말은 ‘벼랑 끝’이라는 말이다. 지금 국가는 절벽이다. 국민들은 불안해 하며 물러서고 있다. 끝은 어디일까? ‘인구절벽, ’교육절벽, 취업절벽, 임금절벽, 금융절벽, 창업절벽, 주거절벽’ ‘고령절벽’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도 한 번만 실패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져버려서 회생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사회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세상은 왜 이렇게도 혼란스럽단 말인가? 살아보겠다고 바둥바둥 거리는데 왜 현실은 이렇게 피곤하고, 혼미하고, 낙심이 찾아오고 우울하고 왜 이래야만 되는 것인가? 나는 얼마 전 멕시코 해안 절벽에 선 적이 있었다. 무섭게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그곳으로 골프공 하나를 날려 보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독수리가 큰 날개를 퍼득이며, 새끼를 보호해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운행하여 주시기를 소원한다. 주여 이 땅에 너풀거리는 주의 날개로 임하셔 이 땅을 덮어 주소서 운행하여 주소서 이 혼돈이 사라지게 하시고 보기에 좋은 땅이 되게 하소서.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무너진 나의 삶속에 잊혀진 주 은혜 돌 같은 내마음 어루만지사 다시 일으켜 세우신 주를 사랑합니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