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고독하나 담대합니다 예레미아29:24-32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0년 9월 9일 오전 08:19
- e 740
진리는 고독하나 담대합니다
예레미아29:24-32
바벨론에서 활동하는 스마야라는 거짓 선지자가 당시 예루살렘에 제사장으로 있었던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들에게 보냅니다. 편지의 내용은 스바냐가 제사장으로서 미친 자이며 자칭 선지자이기에 예레미아의 목에 쇠고랑을 채우는 임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질책하는 내용입니다. 스마야가 노리고 있는 대상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27절). 예레미아가 포로 생활이 길어질 것이니 그곳에서 정착할 준비를 하라고 한 내용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은 바벨론에서 속히 돌아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낙담한 백성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는데 예레미아는 바벨론에서 빨리 나올 생각을 하지 말고 정착하라고 하니 그를 내버려 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스마야는 바벨론 포로 생활이 결코 장기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속에는 하나님이 말씀이 한 마디도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과 예레미아를 향한 분노와 정죄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스바냐를 향한 불만과 책망의 말만 가득하였습니다.
예레미아를 거짓 선지자처럼 매도하고 미친 사람처럼 취급합니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미쳤다면 그리스도를 위해서 미쳤을 것이다. 내가 정신이 온전하다면 그것도 그리스도를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싫어합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를 들을 때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설교를 했다고 설교자를 비난합니다. 어떤 것이든지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렇게 될 줄 믿고 그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마야의 편지, 예레미아를 고소하고 있는 고소장을 받은 은 예루살렘 성전의 책임자인 제사장 스바냐가 예레미아에게 이 편지를 읽어 보라고 합니다.(29절) 이 장면을 보면 스바냐는 스마야의 말대로 예레미아를 잡아서 감금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조용히 찾아와 그 편지를 읽어줍니다. 선지자를 책망하거나 속박하지 하지 않고 편지만 전해줍니다. 스바냐가 선지자에 대하여 우호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30절)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너희에게 예언하고 거짓을 믿게 하였다”고 합니다.(31절)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적도 없는 거짓 선지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시기를 그와 자손들은 단 한 사람도 바벨론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시대는 이단들이 교인 하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교회를 통째로 삼키려고 합니다. 누군가를 통하여 계속해서 교회와 교회지도자를 비난하게 하여 자기들의 힘을 키웁니다. 그래서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아마샤의 “패역한 말”(32절)은 거칠고 강한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백성들이 듣기를 좋아하는 거짓 평안을 의미합니다. 엄청나게 생각해 주는 것처럼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여 헛된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며 회개가 없는 기대만 갖게 만드는 것이 패역한 말입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하기 전에 하나님을 먼저 두려워해야합니다. 나의 의도와 동기가 선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계속적으로 오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해야 했습니다. 억울하고 오해를 받을 때에 예레미야를 생각하며 위로를 삼아야 합니다. 바르고 옳은 길을 걸으며 이 어두운 시대에 빛을 발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목사
오늘 말씀을 유튜브 [박근상목사]에서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이 죽은 지 삼 년 후에, 당대의 설교가 H. Drummond가 아프리카를 방문하면서 그가 만나는 대륙의 원주민들, 특히 리빙스턴과 가까이 했던 사람들에게 리빙스턴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가 무엇을 가르쳐주었습니까? 그를 통해 무엇을 배웠습니까? 그에 대해 무엇이 기억납니까?” 사람들은 그가 가르쳐준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이구동성으로 한 가지 일치된 대답을 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는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을 가르쳐준 지식보다는, 자기들의 가슴에 감동을 준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