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몸과신령한몸 고전15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6월 23일 오전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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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의 몸과 신령한 몸
고린도전서15:35-49
죽은 자가 어떻게 살며, 어떤 몸으로 옵니까?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35절) 죽으면 끝인데, 부활이 어떻게 가능하며 살아난다면 어떤 몸이 될 것인가를 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하여 향하여 "어리석은 자여'’라고 부릅니다. 부활은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증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인내심을 가지고 부활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끈질기게 애쓰는 모습을 봅니다. 부활을 믿기 힘든어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고 비유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의지와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믿음을 방해하는 것도 많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할 일은 그런 장애물을 찾아내고 제거하여 복음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어떤 전도자는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그것을 받고 못 받고는 전도자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복음이 제대로 전달되려면 소통과 설득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고 우리의 현재 몸은 부패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에 우리는 다시 몸으로 살아날 것입니다. 초월적인 것을 현재의 경험을 토대로 한 비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한 알의 ‘밀알’처럼(요12:24) 땅에 심은 씨앗이 새생명을 얻어 싹으로 자라려면 먼저 씨앗이 ‘죽어야’ 합니다. 다 해체되고 소멸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씨앗의 부패는 소멸이 아니라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분해 작용입니다. 심은 씨앗이 이처럼 땅속에서 분해되지 않으면 새싹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의 몸은 죽어 땅에 묻히고 자연스럽게 부패 과정을 겪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직 살아 있는 우리가 생명을 떠날 때 부패로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지막처럼 보이지만 죽음은 씨앗의 썩음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소멸이나 부패가 아니라,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기 위한 창조적 해체 과정입니다.
씨가 썩고 싹이 나고 자라나면 씨와는 전혀 다른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멋진 식물로 자라나는 것처럼 죽은 후에 입을 부활의 몸도 지금의 가지고 있는 육체와는 다른 상상할 수 없는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씨는 초라하고 작지만, 전혀 다른 형체는 너무나 크고 아름답게 하십니다.(37-38절) 하나님은 이 땅에 모든 육체를 가진 것들을 다양하게하시고 우주에 별들도 그 광도(光度)를 다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무한하셔서 이 땅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맟는 영광을 입히셔서 부활시키십니다. 이런 일에 전혀 어려움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으로 우리 하나 하나를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외칠 수가 있습니다.
부활을 말함
“기독교는 종교가 끝나는데서 부활과 함께 시작한다. 부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부록이 아니라 본질이다. 서신들이 부활을 설명하는 게 아니다. 부활이 복음을 설명한다.”(죤 s. 웨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것은 그의 부활의 사실에 의해서만 정당화된다.(파운스 박사) ”우리 주님은 부활의 약속을 책들 속에만 쓰신 것이 아니라 봄날의 잎사귀들 마다에도 쓰셨다. 주님의 왕관에서 빛나는 금강석은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천국에서 불멸하는 존재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마르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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