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구원하지않으셨습니다 마27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4월 4일 오전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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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27:27-44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주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결국 그들 모두가 원한 것은 십자가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죄인의 죄를 대신히여 죽는 예수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교회가 존재하게 된 근거이고 핵심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세상에서 잘 되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틀린 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진정한 목적은 될 수가 없습니다. 신앙의 참된 목적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 사람 사랑의 삶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 우리 인생 가운데 없었다면 핵심을 빼놓은 살고 있는 겁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피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고 손을 씻고 형 집행을 명령하니 곧 형 집행에 들어갑니다. 주님에 대한 조롱과 학대가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로마 군인들이 주님에게 어떻게 했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군사들이 원하는 만큼 직성이 풀릴 만큼 주님에게 온갖 희롱을 조롱을 쏟아 부었습니다. 주님은 점점 육체의 한계에 이르게 되었고 더 이상 매질을 하면 죽을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이릅니다. 군인들이 구경꾼 중에 하나를 끌어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하는데, 그가 북아프리카 구레네에서 온 시몬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 좌우에는 강도가 달려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끝까지 주님을 저주하였고, 그중 하나는 나중에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조롱하기를 자기를 구원하고 내려오라고 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축하며 조롱합니다.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내려와라 자신을 구원하여 보라. 왜 남은 구원하면서 너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가라고 조롱합니다. 주님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나를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초에 조용기 목사님의 이 본문으로 전해진 메시지를 듣고 제 삶이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하셨다면, 우리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이 본문으로 전해진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박힌 말은,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하셨다면 나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한없는 감사와 감격이 있었던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순식간에 심판하실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왜 주님은 침묵하시며 그 끔찍한 고통을 다 받아내셨을까요? 그것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끝까지 십자가에 내려오지 아니하시고 살려주셨습니다.
피가 다 빠져 나갈 때
한 목사가 기독교인이 아닌 농부의 집에서 방을 빌렸다. 목사님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할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어느 이른 아침, 농부가 그에게 닭장에 동행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그 기회가 찾아왔다. 둥지에는 암탉이 앉아 있었고, 날개 아래에서 새끼들이 살짝 내다보고 있었다. "어미 닭을 만져보세요 목사님," 농부가 말했다. 목사가 암탉에 손을 얹었을 때, 암탉은 차갑고 죽어 있었다. 농부가 말했다. "족제비가 어미의 몸에서 모든 피를 빨아먹고 있을 때 새끼들을 해칠까 두려워 한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목사님이 말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모든 고통을 견뎌냈다. 그분은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으셨다. 만약 움직이셨다면 우리는 길을 잃었을 테니까요"라고 했다. 그때 성령께서 농부의 마음을 움직였다. 자신을 살리기보다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상징은 안락의자가 아니라 십자가이다.
-오늘아침- 유튜브빙송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