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계명 마22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3월 13일 오전 11:32
- e 7
최고의 계명
마태복음22:34-46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는 로마 총독의 통치를 받았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에게 권위와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율법에 나오는 613개의 계명 중 무엇이 가장 큰지를 물었습니다.(35.36절) 예수께서 답하시기를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첫째 계명이고,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율법 전체가 이 두 계명에 달려 있으며 예언자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강령(綱領)’이라는 말은 ‘어떤 일에 기본이 되는 큰 줄거리’라는 뜻을 가진 어려운 한자어입니다.(40절) 헬라어 원문에는 ‘크레마타이’인데 매달려있다’라는 뜻입니다. 모든 율법과 그 선지자들이 이 두 계명에 매달려 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 계명을 하나로 묶어서 말씀하십니다. 수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수평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 교차점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은 마음을 다른 것에 뺏기지 말고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로만 향하라는 말입니다.(37절) 마음이 나누어지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은 억지로 하지 말고 뜻을 정하고 자발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전부를 다 건다.’는 뜻으로 ‘올인(all-in)’이라는 말을 씁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전 인생을 다 걸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 차례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시 110:1절을 보면 다윗이 그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었는데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냐 아니면 다윗의 주냐, 아니면 둘 다냐?”를 물으십니다. 당시에 메시아에 대하여 입을 여는 것은 금기사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메세아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거나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46절) 예수님의 가문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빌립의 친구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비아냥거렸습니다. 예루살렘을 움직이는 목수의 아들인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기다려 오던 그리스도가 자신 앞에 있는 나사렛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싶어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이단논쟁을 하듯이 예수님을 논리적으로, 신학적으로 허물어뜨리기 위해서 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신들의 공격이 힘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회를 열어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규정하고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는 선동죄를 고소하여 십자가 처형을 선고하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세상에서 살아 계실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시게 됩니다.
강령이라는 말
강령으로 번역된 원어 '크레마타'는 ‘매달다’라는 '크렘'에서 온 말이다. 한자어 '강령'은 벼리 강(綱), 옷깃 령(領)인데 령은 의복에서 옷깃처럼 아주 요긴하다는 의미이고 벼리는 "그물코가 3,000개라도 벼리가 으뜸이라"는 말에 쓰이는 벼리이. 수많은 그물코 끝부분을 매달아 한 손에 쥐게 해 주며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잡아당길 수 있게 버텨 주는 동아줄인 벼리처럼 수많은 율법과 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선포되고 기록된 신구약 66권 말씀 중에서 가장 크고 중한 두 계명. 둘이지만 실상은 하나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오늘아침- 유튜브방송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