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의하나님 마22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3월 12일 오전 09:46
- e 8
산 자의 하나님
마태복음22:23-33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로 질문을 던졌던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의 지혜로운 대답 앞에 입을 다물고 떠나갔습니다. 뒤이어 등장한 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당시는 보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바리새인, 광야에서 금욕 생활을 하던 에세네파, 그리고 성전의 권력을 쥐고 있던 사두개파가 있었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제사장 가문이었지만 모세오경만을 인정하면서도, 천사나 영적인 존재, 무엇보다 '부활'을 믿지 않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처하게 하려고 신25장의 '계대 결혼법'繼代 結婚法)을 근거로 황당한 질문을 던집니다. 일곱 형제가 한 여자와 차례로 살다 죽었다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논리였습니다. 이는 부활의 세계를 단순히 이 땅의 육체적 관계가 연장되는 곳으로 착각한 황당한 설정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무지를 꾸짖으시며 부활의 본질을 가르쳐 주십니다."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29절)라고 하십니다. 부활한 세계는 이 땅의 육체적 관계나 생육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고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은 존재로 존재하눈 곳입니다. 고전 15장을 보면 누추하고 비참했던 육신은 사라지고 상상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썩지 않는 몸으로 변화된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부활은 돌고 도는 윤회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의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결정적인 증거로 출애굽기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32절).자세히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었다"라는 과거형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나는 ~이다(I am)"라는 현재형을 사용하십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육적으로는 죽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스리는 분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셔서 자신의 자녀들과 영원토록 동행하시는 분입니다.
믿는 자에게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부활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분이 나를 다시 살리실 것과 장래에도 영원히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활은 불신자에게는 허황된 이야기일지 모르나, 믿는 우리에게는 숨길 수 없는 분명한 진리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살아가는 지금도, 그리고 부활하여 영원한 나라에 거할 그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위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품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바울은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고 하였다. 우리는 정말로 살아야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지금 그분과 함께 살아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 것을 믿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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