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박히시다 요19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3월 11일 오전 11:49
- e 67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요한복음19:12-22
빌라도는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고 역정을 냅니다. 침묵하고 계신 예수님에게 도와 달라고 말 좀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침묵 하십니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시기 위하여 누군가를 심판하고 비난하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보면서 빌라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향해서 왕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풀어 주려고 애를 쓰고 있는 빌라도에게 만일 예수를 풀어 준다면 황제 가이사의 친구가 아니라고 협박합니다.(12절) 가이사의 친구라는 용어는 고대사회에서 황제의 측근에게만 부여했던 칭호였습니다. 빌라도는 테베리우스 황제의 신임을 얻고 가까운 측근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잘못하면 총독의 지위를 잃을 수도 있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예민한 문제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당신들의 왕”이라고 부르니까(14절) 유대인들은 "유대인에게는 왕이 없습니다. 우리 왕은 로마의 황제“라고 합니다.(15절) 이 말에 빌라도는 압도 당하고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줍니다.(16절)
예수님은 자신이 달릴 십자가를 친히 지시고 골고다라는 곳으로 나가셨습니다. 십자가 형벌은 살아 있는 사람을 십자가에 집을 지을 때 못질을 하듯이 손발을 박습니다. 죄인에게 부어질 하나님의 진노가 제물에게 부어집니다. 짐승의 죽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TV에서 도살하는 모습을 모자이크 처리합니다. 제물이 죽임을 당할 때 발버둥을 쳤을 겁니다. 피가 쏟아지고 배설물이 흘렸을 겁니다. 죄가 전가된 제물은 긍휼없는 죽음을 맞습니다. 예수님의 죄 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 된 것을 본 종교 지도자들이 그 앞에 '자칭'이라는 말을 넣어 달라고 했으나 거절합니다.
사복음서가 공통적으로 다루는 것 중에 하나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운데에 예수의 십자가도 세워졌습니다. 예수 곁에 함께 매달려 있던 두 사람중에 한 사람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까? 그렇다면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 23:39)며 조롱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순간부터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둘로 나누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모두의 운명은 십자가에 달린 두 사람과 같습니다. 다 자기의 죄로 죽어갈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도 이 두 강도와 마찬가지로 결국 죽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한 사람은 예수님을 외면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인생의 모든 것을 맡긴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면서 나를 위해서 고난 받으신 은혜앞에 삶으로 응답하고 기도로 응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아프셨나요?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얼마나 아프셨을까를 생각한다. 못을 박을 때는 손바닥에 박았나, 손목에 박았나, 피를 많이 홀리셨나, 발에도 못을 박았나, 소리를 지르지는 않으셨나, 고통을 어떻게 견디셨나, 궁금한것도 많다. 주님이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기에 궁금한 게 많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생략되어 있다. 다만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게 전부다. 요한복음은 아픔과 통증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왜 죽으셨는가를 생각해야한다.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