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정죄하지아니하노라 요8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1월 31일 오전 10:18
- e 6
나도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요한복음8:1-11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사이에다 두고 예수님과 군중들 사이에 긴장감 넘치는 장면입니다. 무리들의 아우성과 숨을 쉬기조차 힘든 무거운 침묵과 예수님의 말씀과 여인의 대화가 나옵니다. 주님이 일찍이 성전 바깥쪽으로 가서 말씀을 가르치시는데 많은 무리들이 모였습니다. 그때 간음하다가 붙들린 여자가 사람들에게 끌려와서 예수님 앞에 내동댕이 쳐집니다. 이것은 눈 감아줄 수 없는 죄이며 현장에서 잡혔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정통 유대교 율법으로 보면 이 여인은 투석형(投石刑)에 처해질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율법으로 보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하겠나이까? 만일 예수님께서 죽이라고 하셨다면 재판도 없이 사람을 죽게 하는 그런 로마법을 어기는 일이 되고 늘 사랑을 말하던 분이 잔인하게 사람을 죽게 하는 잔인한 선생으로 낙인이 찍힐 것입니다. 여인을 살려주라고 말한다면 예수님은 단번에 반(反) 율법주의자로 몰리게 될 것입니다. 법대로 하라! 이건 매우 무서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법대로 처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법을 존중하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운명한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대꾸도 하지 않으시고 앉아서 글을 쓰고 계십니다. 침묵의 시간에 사람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이 침묵의 시간에 숨을 고릅니다. 침묵의 시간에 감정을 가라앉힙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이 빨리 결단을 내리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이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시는데 사람들의 심장을 꿰뚫어 보는 듯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입과 눈에 집중되고 잠시 긴장된 시간이 흘러갑니다. 드디어 주님의 입이 열리면서 “죄 없는 자가 이 여자를 돌로 치라” 치라고 하십니다. “죄 없는 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anamartetos'인데 원 뜻은 죄를 짓지 않았다라는 의미일 뿐 아니라 죄에 대한 욕망이 없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행위로 혹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에까지 죄를 품지 않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 돌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었을 것입니다. 정말 이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운가? 어른으로부터 젊은이들까지 다 돌을 놓고 갔습니다. 사는 날이 많을수록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은 더 커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과 거룩함 앞에서 나는 아니야 나는 죄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그 자리에는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돌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갑니다.(8절) 이제 진정으로 죄인을 용서하실 수 있는 분, 그리고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 있는가?” 물으니 “없습니다” 주님은 어디서 누구와 너의 상대가 누구냐 그렇게 묻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앞에서 더 이상 변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나도 너를 정제하지 아니하겠다. 내가 너를 용서하겠다. 가서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곁을 떠나가는 이 여인은 말로도 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가슴에 담고 떠나갑니다.
There, but for the grace of God, go I
요한 웨슬리와 함께 성결 운동을 벌였던 조지 휫트필드(George Whitefield)는 교수형에 처해지기 위하여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유명한 말을 던졌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나 역시 저 길을 가야했을 텐데."--"There, but for the grace of God, go I."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감옥에 가거나 중형을 당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마음으로 죄를 짓고 산다. 우리중 누구도 정죄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다만 용서하고 사랑할 권리가 주어질 뿐이다.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