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를위하여. 삼하19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3년 5월 18일 오전 09:36
- e 610
화해를 위하여
사무엘하19:1-15다윗이 승리를 거두었으나 압살롬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깊은 슬픔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기고 돌아온 자들이 패배자처럼 조용히 성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백성들에게 “내 아들이 반역을 하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까? 나는 개인적으로는 아들을 잃은 큰 슬픔이 있으나 여러분의 충성으로 이스라엘을 도로 찾아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힘을 합쳐서 나라를 바로 세웁시다“ 라고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다윗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백성들은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한 나라의 왕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요압은 다윗의 고통을 공감하며 그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은 마치 아랫사람을 꾸짖듯이 왕이 슬퍼하니 승리한 군인들이 부끄러워하고 있다라고 왕에게 알립니다. 자신들이 다 죽고 압살롬이 살아 돌아왔다면 기뻐하시겠느냐고 묻습니다.”(5-6절)
다윗은 요압의 충고를 빼아프게 듣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생각하기를 요압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군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요압을 대신할 인물을 찾을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요압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윗은 큰 모욕감을 느낍니다. 요압은 왕을 멸시하듯이 말하는 것은 매우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온유함과 두려움과 겸손의 자세를 잊어버리게 되면 그 옳은 말이 옳은 말로 들리지 않게 됩니다. 요압의 이러한 태도는 다윗의 지도력에 크나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지금 왕궁은 비어 있습니다. 다윗은 아직 왕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으로 예루살렘은 주인이 없는 성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성 안에서는 친 다윗파와 반 다윗파 사이에 주도권 싸움이 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그곳을 빠져나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성에 남아서 압살롬을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마음속에는 다윗을 맞이할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윗도 어떻게 예루살렘 성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안을까 그들의 마음을 돌려 놓을까를 고민합니다. 이스라엘의 대통합이 중요합니다. 인생은 왕이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겁니다. 끊임없이 저울질을 합니다. 압살롬을 선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그를 따라간 것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으려고 속이는 압살롬에게 넘어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 왕을 버린 것입니다. 지금 알고 보니까 그것은 반역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들은 다윗은 다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주신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아셨는가 나를 어떻게 대하셨는가 그것을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답이 나옵니다.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입니다. 잠시 세상에 마음을 빼앗겼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언제든지 결단하고 주님 앞에 돌아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들을 배반한 유다 지파를 향하여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대적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이젠느 강가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르고 유다 지파도 다윗을 맞이하기 위해서 나루터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인생은 뭡니까? 주님을 만나는 겁니다. 인생도 주님을 만날 때에 끝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교회
지역교회 이름 앞에 너무 많은 형용사를 붙이는 것을 좋은 것이 아니다. 지역 이름을 따라서 이름을 쓰는 것이 좋다. 이름을 휘황찬란하게 붙였다가 가게 간판 때듯이 사라진다. 교회가 너무 쉽게 세워지고 너무 쉽게 없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의원이 한 사람이 독립된 입법기관이듯 예수를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교회이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에는 없어지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거기에 그곳에 있어야 한다. 동네에 가면 동구밖에 500년 묵은 당산나무가 서 있는 것처럼 교회는 그 지역을 지키며 우뚝 서 있어야 한다. 규모가 크거나 작거나 상관이 없다. 크기에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자부심과 존엄을 지켜가야 한다.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