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그리고 이별의 상실감 삼하13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3년 5월 4일 오전 08:38
- e 591
죽음 그리고 이별의 상실감
사무엘하13:23-39
다말의 친오빠였던 압살롬은 다말의 일에 대하여 옳다 그르다 하지 않고 입을 다문 채로 두 해를 보냅니다. 암논은 긴 시간이 아무런 일 없이 지나갔으므로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한 죄책감과 두려움들도 희미해져 갔습니다. 2년이라는 기간이 어떤 이에게는 짧은 기간일 수도 있으나 어떤 이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들일 수 있습니다. 다말에게 2년은 수치심과 공포와 상처로 인한 괴로움의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다윗에게도 자식들의 문제로 인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복수의 칼을 갈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모두 풀어야 합니다. 다말도 받은 상처를 치유 받고 그를 용서하는 기간이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바르게 교육하는 기간이어야 합니다. 압살롬은 분을 풀어야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신앙적으로 문제에 풀려고 한 흔적이 없습니다.
만 2년 후에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에브라임 곁 바할하솔에서 압살롬이 양터를 깎는 일이 있을 때에 압살롬은 암논 제거 계획을 세웁니다. 압살롬이 다윗 왕을 초청하였으나 틀림없이 왕이 오지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선물을 주며 복을 빌면서 초청을 사양합니다. 그러자 압살롬이 그렇다면 형제들이라도 꼭 참석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왕이 오지 않겠다고 하면 왕 대신 왕세자를 모시고 싶다고 요청합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다윗은 자기 아들들을 압살롬에게 보내고 암논까지 보내게 됩니다. 고양이가 먹잇감을 앞두고 그 구멍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는 것처럼 그날이 바로 압살롬이 기다렸던 날이었습니다. 다윗 왕이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들을 암논과 함께 보냅니다.
왕 자와 왕세자가 참석한 자리이기 때문에 주변에 칼을 찬자들이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칼을 찬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은 왕세자 암논에게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압살롬은 종들에게 암논이 술에 취해 있을 때를 보았다가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치라고 합니다.(27-28절) 경계 근무를 서던 종들이 칼을 뽑아 왕세자 암논에게 다가가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왕세자 암논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암논 맏형이 압살롬에게 처참하게 죽는 것을 보고 나머지 왕자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언제 또 다른 살해 명령이 떨어질지 몰라 왕자들은 허겁지겁 나귀를 타고 줄행랑을 쳤습니다.(29절) 이것은 대단한 사건이고 엄청나게 큰 뉴스거리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상당히 먼 곳인데도 잔치 도중에 압살롬이 자기 아들들을 다 죽였다는 말을 듣고 말할 수 없이 슬퍼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이 일어나서 자기 입던 옷을 찢어버리고 땅에 엎드립니다. 그러니 그를 모시고 있던 신하들도 옷을 찢고 땅바닥에 엎드립니다.
이때에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다윗 앞에 등장합니다. 요나답은 2년 전 암논의 다말 사건의 배후 조종자였습니다.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고 오직 암논만 죽었다고 전합니다. 압살롬은 국경을 넘어서 그의 외가가 있는 그술이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거기서 3년 동안 은신하여 숨어 지냅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집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자식들은 부모를 파먹고 산다고 합니다. 죄를 짓고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미안해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가 무서워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있지는 않은가요? 몇 년이 되셨습니까?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떠나있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영적 권위의 위기
여러 가지 권위가 있다. 자기 직책에서 오는 권위, 돈으로 행사하는 권위, 나이가 많다는 권위 등이 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영적인 권위를 갖지 못하고, 직책에서 오는 권위를 행사하기 쉽다. 지금은 ‘탈권위 시대’를 넘어서 ‘무권위 시대’이다. 권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이다. 영적 권위가 없이 권위를 행사하려 하면 교회도 ‘회사’나 ‘기관’으로 전락한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유명 인사, 유명 목회자가 생겨나고 있다. 많이 알려져서 유명하기는 한데, ‘영적 권위’가 없을 수도 있다. 유명한 자 같으나 무명한 자로서 ‘영적 권위’가 있어야 한다. 말씀 연구와, 기도와, 삶의 경건에서 나와야 한다. 늘 조심해야 한다. 세상에서 돈의 힘이 행사되는 것은 당연하나 교회에서도 그렇다면 영적 권위는 사라진다. ‘돈이 없어서, 교회가 작아서..’ 그런 핑계를 대면, 안된다. 영적권위의 문제이다.
-오늘아침- 유튜브[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