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청년의 고민
마가복음10:17-3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까이 나아가실 때에 한 부자 청년이 나왔습니다. 이 청년의 관심은 영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19장을 10절 보면 “한 청년” 눅18:18에는 “관원”이라고 하고 본문에는 “한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 앞에 달려 나와 꿇었고(17절) 예수님을 존경할만한 랍비로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묻기를 “무엇을 하여야”라며 어떤 업적을 선행을 대가를 치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인간이 처한 상황은 딱 한가지 즉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는 것이며 지옥가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어려부터 나름대로 계명을 잘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보실 때에는 아주 더러운 누더기를 걸치고 와서 펄럭이면서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 당당히 서 있는 불쌍한 죄인에 불과하였습니다.
“영생을 얻으리이까” 인간은 돈과 권력과 젊음으로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다”라고 하였습니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가 눈에 보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라고 합니다.(전5:10-12절) 육신의 조건이 다 채워 졌을지라고 그의 영혼은 얼마든지 버려질 수 있고 병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이 청년은 예수님을 상대적이 훌륭한 선생으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청년으로부터 “나는 죄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으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 있게 말하기를 자신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합니다. (20절) 율법을 지켰다고 해서 영생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율법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려면 다 지키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인간중에 율법을 다 지킨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결국은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자는 죄인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율법을 다 지키다가 단 한 가지만 못 지켜도 죄인이 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공로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사람에게 네 소유를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이 청년을 “사랑하사”(21절) 주님을 이 청년을 곤란하게 만드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근본 문제를 풀어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결단 앞에 서게 됩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22절을 보면 예수님의 요구를 들은 청년은 고민을 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돌아가고 나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할 때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항상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 가지를 가지고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고 합니다. 사람이 병에 걸려 죽는 것이 100가지 병에 걸려 죽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의 병이 심각하게 들면 죽습니다. 이 청년은 슬픈 기색을 띄고 돌아갔습니다. 부자가 돌아간 후에 주님은 부자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은 구도자로 찾아왔다가 근심하며 돌아가는 청년에게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생각이 바뀌면 돌아오라고 여운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누가 부자인가
구약의 아브라함은 엄청난 거부였다. 그의 아들 이삭, 또 그의 아들 야곱, 또 요셉(애굽의 총리), 아브라함과 동시대 사람이었던 고난의 사람 욥, 또 다윗도 왕이었으니 부자였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역사상 최대의 부자였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을 장사지낸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엄청난 부자였고, 삭개오도 엄청난 부자였다. 그들은 큰 재산을 가진 부자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신실한 종이라고 인정을 해주셨다. 부자는 단지 재물만 많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부자는 돈만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재물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재물을 너무 꽉 붙잡고 있어서 천국으로 데려가시려고 해도 재물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