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라도
마가복음7:24-37
예수님께서 이방지역 가까운 두로 지역을 가실 때에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스로보니게 출신 여인이 와서 엎드립니다. 성경은 말하기를“더러운 귀신”에 들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마귀를 말할 때에는 “원수 마귀”라고 하시며 정체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악한 영은 위장하고 천사의 탈을 쓰고 와서 인간의 영혼을 더럽게 만들고 파괴합니다. 스로보니게라는 말은 스로지방의 보니게라는 마을을 의미합니다. 딸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민족적인 차별을 받는 것을 개의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매여 달립니다. 이 사건을 기록한 마태의 기록을 보면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면서 쫒아옵니다.(마15:22-23) 그러나 예수님이 들은 척 하지 않으시고 지나치려하십니다. 자녀의 배를 먼저 부르게 하기 때문에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던져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7절) 개와 같은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 여인은 말하기를 예수님의 말이 옳은 말씀이라고 합니다. 개가 주인의 상에 올라와 음식을 먹는 것은 안된다고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개라는 말 즉 ‘퀴나리온’은 야생개가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입니다. 신앙의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입니다. 내가 시퍼렇게 살아 있으면 힘이 듭니다. 예수님을 “주여”(28절)라고 부른 곳은 마가복음에서 딱 한 곳 뿐입니다. 만일 그 여인이 자존심을 세우려 했다면 그곳을 떠났을 것입니다. 주님이 돌아가라고 하시면서 귀신이 떠나갔다고 선포하십니다. (29절)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 “네 믿음이 크다”(마19:28)하시고 기이여기셨고 유대인에게도 볼 수 없는 믿음을 이방인에게서 보시고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나았음을 선포하십니다. “나갔느니라” 이 여인이 집에 돌아가 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아이는 이미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두로 시돈을 지나서 데가볼리를 지나서 갈릴리 호수에 이르게 됩니다.(31절) 이때에 귀가 먹고 말을 더듬는 한 사람을 사람들이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기를 떠나 손가락으로 그의 양귀에 넣습니다.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고치실 때에 귀에 손가락을 넣은 이유는 예수님이 뭔가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얼마든지 손대지 않고 고치실 수 있으나 접촉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과 인격적인 관계를 주님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 환자에게는 예수님의 이런 행동이 마치 언어와 같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환자에게 보내는 바디렝귀지(Body Language)였습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실감나게 하는 예수님의 치료 방법이 얼마나 흥미로운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면서 그에게 ‘에바다’하시니 열리라는 의미입니다.(34절) 그때에 혀를 묶고 있는 것이 풀려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심히 놀라고 말하기를 예수님이 하신 일을 참 잘한 일이라고 칭송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37절)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 사람이 고침 받고 경계하라는 말씀을 듣지 않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행동반경이 좁아졌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막힌 귀를 열어 주시고 입을 열어 주셔서 복음을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일관성의 미덕
지도자의 덕목으로 간주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인티그리티'(integrity)이다. 이 단어는 우리 말로 번역되기가 쉽지 않은 단어이다. 인티그리티의 뜻은 통전성(統全性), 정직, 일관성이 좋을 듯 하다. 인티그리티는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품성과도 닮았다. 진정한 성공은 궁극적인 성공이다. 궁극적인 성공은 일관성의 미덕을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이다. 오늘 이 시대는 '한결같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결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참 드물어 보인다. 하나님은 오늘도 한결같은 사람들을 찾으신다.
-이 내용은 1월 29일 총회 목회대학원에서 할 강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