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관련설교
제 목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본 문 : 시편 22:20-23
주기도문 송영에서 “영광”에 대하여 두 번째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 갑시다 라는 말씀을 고린도 전서 10:31-33
말씀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시편 22:23 하반절에 보면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우는 아브라함의 후손 들 입니니다.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면 영적 야곱의 후손 들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시편을 통해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의 목적 중에서도 제일 되는,
즉 "첫째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라.' 고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되는 목적에도 두 가지인데
그중에서도 첫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즉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어떤 은혜를 받았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죄용서 받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죄용서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천국 백성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
(따라서) 땅에서는 죄가운데서 구원
하늘에서는 영원한 영생 입니다
때문에 예수믿지않는 사람들은 이런 은혜를 받지 못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면 돌릴 것이 없습니다.
자신에게만 영광을 돌리고 맙니다
어떻게HOW)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있습니까? 먼저 물어 보겠습니다
지난 주간 어떻게 영광을 돌리며 살았습니까?
지난 주간 주로 했던 일이 무엇 입니까?
오늘 주일 예배에 참석하신 모두 한분 한 분 물어 보고 대답했으면 합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생각 하십시오.
나는 지난 주간 아픈 남편 간호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일도 하나님의영광과 기뻐하심을 위해 했다면 나의 인생에 목적 있는 일을 했다
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지난 주간 돈을 벌려고 다른 사람들 빨래만 열심히 했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손님 태우고 운전만 했습니다.
나는 일주일 공부 열심히 하고 주말에는 부모님 열심히 도와 드렸습니다. 봉사 했읍니다
나는 집에서 청소하고 설거지만 했습니다.
나는 일주일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사무보고 전화하고 그런 일을 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무엇을 했습니다.
자동차로 운전을 하는 동안 이었던지, 밥을 먹는 동안 이었던지, 심지어 화장실에 있는
동안 이었던지, 잠을 자는 동안이었던지
이 모든 일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과 기뻐 하심을 위해 했다면 나의 인생에 목적 있는 일을 했다 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이 모든 일을 하는 동안 불평하고 짜증내고 내 팔자가 왜 이 모양이야!! 한숨 쉬며 괴로워 했다면
인생의 삶의 진정한 목적과 가치를 모르고
하루 하루를 살아온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런 생활을 했다면
성령 충만 하지 못한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우리의 삶의
현주소를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고백이 모든 순간 무슨일을 하던지 하나님께 영광이 된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 배우고
깨닫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어떻게HOW)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첫째: 간증하는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20-22상).
20절에서 22절 상반절에 보면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 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다윗이 건지시며,
구하소서, 구하소서 하다가 구원하셨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겠다고 말합니다.
본문을 상고하면 다윗이 이중삼중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헤쳐나갈 재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칼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호소하고 있는데 칼이 그림자처럼 따라옵니다. "어떻게 칼이 따라옵니까?" 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사울 왕이 다윗을 잡아죽이기 위해 삼천 명에게 칼을 쥐어 주고 전국을 샅샅이
뒤지게 하였습니다.
칼이 따라 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혼자 싸워서는 이길 수 없는 삼천 명의 칼입니다.
그래서"칼에서 구원해 주소서."라 한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개의 세력에서 구원해 주소서." 라고 호소합니다. 이 말을 심한 말로 표현하면 "개 같은 사람들에게서 나를 살려 주십시오." 라는 말입니다.
다윗이 어떤 경우에 이런 일을 당하였습니까? 압살롬과 그의 일당에게 당한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친아들이 아닙니까?
그렇게 사랑하던 아들이었는데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가 왕의 자리에 앉겠다고 패거리를 지어 쳐들어왔습니다.
다윗은 꼼짝없이 요단강 밖으로 도망을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패거리들이 개같은 자들이 아닙니까? "그들에게서 나를 구원해 주소서." 라는 말입니다. 매일 죽음이 기다리는 순간 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다윗은 어찌되었습니까?
기적같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계속 사자가 큰 입을 벌려 으르렁
대는 삼키려는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래서 "사자의 입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사자와 싸워 이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윗에게 있어서 고난은 끊임없이 계속 되었읍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내게 응락 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다.' 는 것입니다.
칼에서, 개의 세력에서, 사자의 입에서,
들소 뿔에서 고난받을 때 기도했더니 응답
받고 구원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선포하면 전도가 되는데, 믿는 형제들에게 선포하였기에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런 간증을 통하여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쳤고, 이것을 읽는 우리에게도
은혜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간증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가 간증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간증거리가 있어야 됩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저는 간증거리는 없는데 간증하라고 하면 어떻게 간증을 합니까?
우리가 그 동안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서 이만큼
살아왔다면 "간증하라."할 때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에게 간증거리가 없다.'라고 하게 되면 그 믿음 자체를 한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어머니를 두고 생각해 봅시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는 믿음과 같은분 입니다
세상에 어머니는 낳아주셨던 키워 주셨던 어머니가 안 계신 분이 있다면 손들어 보세요
어떤 사람은 "나는 어머니께서 죽어서 세상 떠나서 안 계시는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계셔서 나를 낳아서 이만큼 키워 주셨기 때문에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나에게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간증할 것이 없다면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에게는 어머니가 대학공부를 시킨 것도 아니고, 집을 사주고, 유산을 많이 남긴 것도 아닙니다. 자식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준 것이 있어야만 어머니 사랑을 간증합니까?"
이런 자식은 뭐라 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학공부 안 시켜주었다고 어머니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고, 나에게 유산을 주지 않았다고 어머니의 사랑이, 사랑이 없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자녀는 잘 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된 것입니다.
어머니 없이는 '나'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을 간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축복에 대해서, 간증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 난후, 교회 생활 몇십년을 했어도
내가 별로 세상적으로 축복 받은것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해서 간증해야 합니다.
그때 참으로 그 간증이 은혜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우리의 신앙에서 적용 할 수있는 부분을 생각해봅시다
다윗이 이렇게 문제를 해결되었음을 간증 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헤쳐 나왔고, 살아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까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민자의 삶은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멧세지가 있습니다.
모두에게 결정적으로 범하는 신앙의 실 수
를 말합니다.
이 고난을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하고 살아남을 줄로 믿고 감사 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면 "다윗이니까 그렇지. 나는 안돼,
나는 안돼." 라고 뇌까리며 앉아 있습니다.
이런 신앙유형의 타입은 아주아주 문제입니다. 스스로 이런 사람이 바로 우리 일 수 있읍니다.
고백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물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 이십니까? 나의 하나님 이십니다
다윗의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 이십니까?
나의 하나님 이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입으로 고백을 곧잘 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문제가 생길 때에는
(입이이 만큼 나와서)
"그것은 다윗이니까, 아브라함이니까 그렇지, 김석원목사님 이니까?
그렇지 나는 안 된다", 내 남편은 , 내자녀는 우리집 은 안된다 고 말을 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나는 할 수 있다." 고 하는지 아십니까? 언제 간증을 할 수 있게 됩니까?
가령 아무개(성은 아씨 이름은 무개) 집사님, 이 사람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집사님이십니다. 완전히 망가 졌습니다. 사업도 망하고 자식들도 망가지고 하여, 이제는 교회에 망신스러워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적같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문제가 풀리고 다시 일어선 것입니다.
살아남을 뿐 아니라 큰 소리치며 살게 되었습니다.
아무개 집사님이 앞에 나와서 "여러분, 여러분의 고통이 내가 당한 고통과 같은 것입니다.
그때에 내 고통보다 크신, 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과 의논하였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한번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그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되었다면 여러분들도 그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할때 비로소 "나도 할 수 있다."라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개 집사가 한 것을 머시기(성인 머고 이름은 시기) 집사인 내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을 했기때문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증이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고, 격려가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증하는 일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시다.' 라는 말입니다.
오늘 다윗이 믿음의 할아버지 야곱을 인용하여 고백한것처럼 “하나님께 영광” 을 간증 하시길 축원 합니다.
둘째: 찬송하는 일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22하-23상).
본문 22절 하반절에서 23절 상반절을 보면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이 그런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삶을 얻는 귀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어 찬송을 부르는데 '회중에서 찬송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찬송하리이다.' 라고 하는 것은 '내가 찬송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찬송할지어다.' 라고 하는 것은 너희도 나를 따라 찬송을 부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인 회중 가운데서 다윗이 먼저 찬송을 불렀더니 회중이 따라 부르고, 그 모인 자리가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찬송은 누구 에게 하는 것입니까?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 부르는 사람, 찬송 부르는 모임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임입니다.
이 본문을 히브리서 기자는 2장 11절 12절13절 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이다.'라고 인용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구원 얻고 찬송을 불렀읍니다
여기서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함을 입는 자가 하나에서 났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거룩함을 입는 자는 누구입니까?
우리들입니다. 주님이 언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까?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사, 그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주실 때 였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찬송을 부르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부르게 됩니다.
혼자 있어도 찬송, 집에 있으면 그 가족과 함께 찬송, 교회 나오면 누가 떠들고 말하자고 할까봐 걱정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뒤로하고 찬송을 부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지 못하면 찬송을 부르자고 해도 부르지 않습니다. 찬송 부르는 시간이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몸을 비틀고 인상을 씁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고 믿으려다 보니 예배시간에 계속 늦습니다. 시간을 계산하게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지금 교회에 가게 되면 찬송하는 시간이다.' 하여 그 시간을 지나서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르고 '이 시간에 가면 장로님의 대표 기도하는 시간이다.' 이것도 싫다고 하여 그 시간에 지나서 도착하려 합니다.
'이제 가면 목사님의 설교 시간이다.
설교만 들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늦는 분들이 왜 늦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배시간에 찬송을 한 장도 부르지 않고 돌아가게 됩니다.
기도가 귀찮아서 기도시간이 싫습니다.
설교까지 듣지 않고 예배 드렸다고 하면 좀
마음이 꺼림직하여 설교라도 듣고 갑니다
은혜 받지 못하면 찬송을 부르지 못합니다.
은혜 받으면 찬송하고 찬송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생각하고 '교회 중에서 찬송하겠다.'라는 것입니다.
이때에 우리가 거룩함을 입고, 주님의 구원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요즘 말로 말하면 "나는 교회에 나왔다 하면 잡소리 하지 않고, 떠들지 않고
구원의 은총을 찬송하겠다."
예배 시간 잡소리 하지 않고 예배만 집중 하므로 하나님께만 영광 돌려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 버나드라는 사람이 62세에 죽습니다. 얼마나 독실한 일꾼인지 나중엔 성자 칭호를 받습니다. 그가 죽기 얼마 전에 병이 들어 몸이 몹시 쇠약해집니다. 이쯤 되면 만사가 귀찮아 집니다.
그런데 그가 지은 찬송이 지금까지 100년 이상 동안 찬송가에 포함되어 불려져 옵니다.
즉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가슴에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녀의 사랑을 생각 해보면 알 것입니다.
자다 말고 여자가 미친 여자처럼 싱글싱글 좋아합니다.
지금 이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남자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아닙니까?
그런데 새벽 두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좋아하는 남자입니다.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핸드폰 사용요금을 감당 못할 정도로 좋아합니다.
음성을 들으면 생각을 하는것보다 더 좋습니다.
음성을 들으면 더 좋은데,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직접 만나 보는 것입니다.
직접 보면 떨어지기 싫습니다.
이처럼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죽음을 얼마 앞두고 성버나드는 이 찬송을 한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시는 줄, 즉 함께 계신 줄을 믿고 사는 것이지 보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이 육신의 장막을 벗고 천국으로 가는 날 주님과 얼굴을 대하여 친히 볼 것이요.' 이것이 천국이 아닙니까?
이 찬송이 100여년 이상 동안이나 불리어진 찬송입니다.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을 안다고 버나드는 계속 찬송을 하였습니다. 은혜 받은 자가 지은 찬송이요.
찬송은 은혜 받은 자만이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찬송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은혜 받았으면 찬송으로 하나님께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경외하는 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23하).
본문에서 23절 하반절,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경외라고 하는 말은 '무서워하다', '두려워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무서운 줄을 모르고 교회에 나와서도 못하는 짓, 못하는 소리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 생활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안됩니다.
갓난아기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할 때에는
부모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성장하면 바로잡기 위해서 그냥 두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망나니로 키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식 기를 안 죽이겠다고 내버려 두기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면 항상 문제가 됩니다. 자식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십니다.
뒤집어 놓으면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 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신만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눈 썹털만한 죄도 타협을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뒤집어쓰시고, 담당해 죽으시고, 저주받았기 까닭에 우리는
죄의 책임을 면하는 것 뿐입니다.
지금도 망할 짓을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아는 사람은 망할 짓을 하여 망해놓고 뭐라고 하는 지 아십니까?
공의의 하나님이신 줄은 모르기 까닭에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 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볼까봐, 알까봐, 들을까봐 무서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보지 못해도, 알지 못해도, 듣지 못해도, 다 아시기 까닭에 하나님 무서워하는 사람은 사람이 무섭지 않습니다.
망해도 무섭지 않고 죽는 것도 무섭지 않으나 하나님밖에 무서운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경외' 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만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순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23절 하반절,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즉 경외하는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경외함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1. 모든일이 간증이 될 수있는 신앙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2. 찬송하는 일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모든 일, 모든 장소, 모든 시간 찬송 하거나
찬송 드리는 자세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아 갑시다
3.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시지만
꼭 자기 방식대로 살겠다고 고집하며 계속해서 뻔이 알면서도 죄를 지으면 무섭게
야단 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일에 사랑과 공의의 하나 경외하는 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의 삶이
세상에 우리를 통해 이루어 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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