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다리고 있는가 요5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1월 17일 오전 10:17
- e 18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가?
요한복음 5:1-9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1절) 절기는 유대들에게는 축제이고 기쁨의 날입니다. 그런데 축제 분위와는 다른 장소가 있었습니다. 어둠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축제를 위하여 모인 사람들은 누구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Bethesda) 연못가로 찾아 가십니다.(2절) 거기에는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중풍병자들)"이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3절)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양들을 사고 파는 시장 곁에 있기 때문에 양의 문의 곁에 있는 베데스타 즉 자비의 집(the house of mercy)이라고 부르는 연못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행각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자는 절망적인 환자들이 모여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전설에 천사들이 와서 물을 휘저을 때에 들어가면 병이 낫는다고 전해집니다.(4절) 물이 움직이면 먼저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들입나다. 남의 사정을 들어줄 여유가 없는 경쟁자들입니다. 이 세상은 선착순의 세계입니다. 군대에서 얼차려로 선착순을 하다가 병사가 사망했다는 비보가 들립니다. 38년된 이 사람은 철저한 낙오자였습니다. 20대 초반에 발병을 했다고 치면 이 사람은 벌써 60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긍정의 힘이 그들의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오셔서 묻습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는가“(6절) 희망고문이 날마다 벌어지는 곳, 처절하게 무자비한 곳에 베데스타였습니다. 아직도 너는 희망을 가지고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물으시는 것은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38년 된 환자가 상징하는 것은 예수님이 없이는 조금의 가망이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진정한 베데스타입니다. 예수님은 38년된 환자에게 관심을 갖습니다.(5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경쟁에서 이긴 결과가 아니라 그것과 상관 없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때 조금만 더 기다려라 물이 동하면 내가 너를 도와서 그래도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동작이 빠른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거저 주어지는 겁니다. 주님이 그에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나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화를 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 해가 떴으니 “일어나라”(8절) 그대로 믿고 일어나 버렸습니다. 제일 놀란 사람이 그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희망고문을 희망으로
인간에게 희망이 없다면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희망고문은, ‘거짓된 희망으로 오히려 괴로움을 주는 행위’, ‘안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주어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희망은 더 큰 실망으로 돌아오고 고문이 되고 있다. ‘희망’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힘센 단어이다. 희망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노끈’을 뜻한다. 희망은 하나님과 연결된 노끈이다.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굵은 희망의 끈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희망이 사람과 엮이기 말아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끈이 희망이다.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